다시 회사 인간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뒤 처음에는 ‘어디 한번 얼마나 연락이 오나 볼까’ 자신감 반, 실험정신 반으로 평소 하던 일과 관련이 있는 듯하지만 또 전혀 다른 분야이기도 한 업계에 열심히 이력서를 집어넣었다. 그 분야는 경력자만 뽑았다. 그리고 결국 내 경력은 ‘관련성 0%’로 산정이 됐는지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자신감) 지못미.
그러다 드디어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 싶습니다.” 계속 연락을 못 받았던 터라, 지극정성 겸손한 자세로 이력서를 쓴 곳이었다. 여성 임원이 단독으로 면접을 보면서 내게 말했다. “직원들은 사실 만류했는데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요. 경력이 많아서 사실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이력서에 열정이 묻어나고 감각도 있어 보여서.” 30인 미만의 작은 회사였다.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작은 회사인 만큼 근무 여건이 좋지 않았다. 야근은 불확실하게 잦고, 급여는 적었다. 아이들이 좀 컸다면 기꺼이 일했을 테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두 아이 엄마인 내가 돌봄 선생님 인건비를 감당하며 다니기엔 힘든 회사였다. 간곡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첫 면접을 마쳤다.
정규직인데다가 간부급이고 급여도 괜찮아 지원했지만, 알고 보니 4대보험도 안 되고 내가 팀을 꾸려서 개인사업자처럼 일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미국 프리랜서 기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1990년대 이후 구조조정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재취업 구직전선을 체험하고 쓴 <희망의 배신>에서처럼 겉만 번드르르한 ‘사기성 업체’들을 대면하자,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바닥이구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현실인식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나는 ‘정규직 취업’을 포기했다. 그러자 조금 숨통이 트였다. 급여가 나쁘지 않았고, 원하는 직무가 정확했다. 나는 그 직무만 성실히 수행하면 됐다. 아무래도 육아휴직 등으로 대체인력이 필요한데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에는 부담이 있어 나오는 계약직 채용 공고들이었다.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을 자각했다.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고비가 왔다. 세상의 기준으로 ‘제대로’ 된 회사의 임원들은 꼭 압박 면접을 한다. 인권침해 면접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10여년 전 취업준비생일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면접관이 나에게 질문했다. “아니 요즘 성인지감수성, 성인지감수성 하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세상이 삭막해요. 나는 우리 여자 직원이 ‘과장님, 같이 밥 먹으러 가요’ 하고 팔짱을 끼면 뿌리칠 수밖에 없다니까. 도대체 성인지감수성이 있어서 좋은 게 뭐예요?” “잠 안 자고 얼마나 일할 수 있어요?” 같은 질문이 줄을 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이걸 듣고 있어야 하다니. 화가 났다. 성질 같아서는 “그 질문에 이의있습니다”라고 해야 했지만 이 또한 평가거니 생각하며 최대한 성실하게 답했다.
‘잠 안 자고 얼마나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잠을 안 자고 일하지 않아도 되도록 업무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성인지감수성’ 운운하는 질문에는 “성인지감수성이 없어서 불편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뿌리칠 수 있다면 괜찮은 거고 뿌리칠 수 없어서 문제인 겁니다. 대신, 뿌리칠 권력이 없는 분에게 불편이 예측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구구절절 착하게 답했다.
나의 참을성이 인정받았는지,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계약직 팀장으로 재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직과 성공이 적절한 조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면을 빌려, 더 이상 ‘압박 면접’을 빙자한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런 질문보다는 업무 관련 질문을 하나 더 물어보면 좋겠다. 피면접자는 약자다. 면접관이 될 많은 직장인들은 명심해주길.
리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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