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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여론다양성 해친다” 미국선 의회서 부결시켜

등록 2009-07-12 19:22

마이클 캅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당시 의장대행(손으로 가리키는 이)이 지난달 12일(현지 시각) 워싱턴 연방통신위 본부에 있는 ‘디지털티브이 전환 통제 센터’를 방문해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방통신위는 공화당 집권시절인 2003년과 2007년 두차례 신문과 방송 교차소유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의회와 법원, 시민단체 등이 “여론 다양성 훼손” 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워싱턴/AP 연합
마이클 캅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당시 의장대행(손으로 가리키는 이)이 지난달 12일(현지 시각) 워싱턴 연방통신위 본부에 있는 ‘디지털티브이 전환 통제 센터’를 방문해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방통신위는 공화당 집권시절인 2003년과 2007년 두차례 신문과 방송 교차소유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의회와 법원, 시민단체 등이 “여론 다양성 훼손” 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워싱턴/AP 연합
연방통신위, 신·방겸영 확대 두차례 다 좌절
시민단체등 각계 반발…보수단체까지 반대
‘교차소유 제한’ 사회적 합의 더욱 확고해져
“여론다양성이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여론다양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어야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가능하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가 2007년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추진하자, 프리프레스(freepress), 커먼 코즈(common cause) 등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이렇게 외쳤다. 미국 시민들은 이 주장에 동의했고, 의회는 신·방겸영안을 부결했다.

신문·방송의 겸영 필요성을 주장할 때 미국 사례는 단골처럼 활용된다. ‘미디어산업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겸영을 허용해서 매체산업의 경쟁력도 높이고 여론다양성도 확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 동일여론시장 내 신·방겸영 불가

겉보기에 미국은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90개 신문을 거느리고 있는 가네트 재단은 23개의 지상파 방송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일 시장’(DMA; Desinated Market Area)에서는 안된다. 동일시장은 여론조사기관인 닐슨미디어의 시청률 조사 단위를 차용해 나눈 지상파방송 권역이다. 미국에는 현재 210개 ‘동일 시장’이 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동일시장에서 신문과 방송 사이의 단순한 지분보유는 물론 운영이나 지배가 모두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규정(CFR)에도 에이엠(AM), 에프엠(FM), 티브이는 전파도달범위 안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교차소유할 수 없도록 돼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교차소유되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의해 한 지역의 여론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미국의 기준을 따른다면 중앙일간지가 전국을 장악하고 있어 온 나라가 하나의 동일시장인 우리나라에서도 신·방겸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면 미국이 교차소유를 규제하는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다.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방송도 미국에서는 최소한의 정부 개입과 시장의 원리에 입각해 출범했다. 초창기부터 기업들이 방송을 소유했고, 규모의 경제를 누리려는 신문사들도 티브이 방송국을 거느렸다. 그러다보니 소수가 지배하는 매체구조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과 지역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연방통신위원회는 1970년 동일지역에서 한 사업자가 소유할 수 있는 매체의 범위를 신문은 1개 이상, 티브이 또는 라디오는 1개로 제한하는 규칙을 도입했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1975년 동일지역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커뮤니케이션법에 명문화됐고, 이 법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교차소유 관련 제도의 변천
미국 교차소유 관련 제도의 변천


■ 신·방겸영 완화 시도와 좌절

동일시장 내 신문과 방송 교차소유 규제는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이 발효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매체환경의 변화 등을 이유로 정부는 한 사업자가 소유할 수 있는 티브이방송국 수의 제한(12개)을 폐지하고, 시청점유율 상한선도 25%에서 35%로 늘렸다. 신·방겸영을 뺀 전면적인 규제완화가 단행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회는 연방통신위원회에 교차소유 등 미디어 소유규제의 실효성을 2년 주기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000년 나온 첫 번째 보고서에서 연방통신위원회는 “교차소유를 금지한 1975년 이후 매체환경이 변하기는 했으나 소유의 다양성이 여론다양성에 기여하는 점은 여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2003년 두 번째 보고서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매체환경의 변화와 신문 등 전통매체의 경영난을 거론하며 상위 170개 동일시장에서 교차소유 규제완화를 제안한 것이다. 즉 동일시장에 4~8개의 방송국이 있는 경우 교차소유 규제를 완화하고, 9개 이상인 경우에는 전면 허용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각계로부터 큰 반발을 불렀다. 커먼코즈의 첼리 핀그리 회장은 “오늘은 미국 민주주의가 암흑에 빠진 날”이라고 절규했다. ‘미디어개혁운동’(mediareform.net) 등 수많은 시민·언론단체 사이트에서는 교차소유 완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이 개정안은 2004년 연방순회 항소법원의 ‘발효보류’ 결정으로 불발에 그쳤다.

교차소유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연방통신위원회의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연방통신위원회는 첫번째 완화 시도 실패를 거울삼아 미국 전역을 돌면서 8차례의 공청회를 여는 등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2007년 제한적인 교차소유 완화안을 내놓았다. 즉,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상위 20개 동일시장 구역에 1개 신문과 1개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하기로 했다. 단, 4대 네트워크 방송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교차소유가 이뤄진 이후 해당 지역에 8개 이상의 다른 매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이는 지분 보유 상한선 제한(지상파 20% 등)만 있을 뿐, 지역에 대한 제한이나 지분보유가 가능한 방송의 갯수, 단계적 허용을 위한 점유율 기준 등이 없는 한나라당의 신·방겸영안보다 훨씬 느슨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한적인 교차소유 허용안도, 의회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도 이에 참여했다.

■ “매체환경변화·경쟁촉진보다는 다양성이 중요”

두번에 걸친 연방통신위원회의 교차소유 완화 시도의 주된 근거는 매체환경의 다변화와 시장경쟁의 활성화였다. 즉, 1970년대에 견줘 2000년대는 인터넷 등 수많은 매체들로부터 뉴스와 정보 습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금지 규정이 경쟁 및 다양성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교차소유를 허용해도 좋을 만큼의 ‘실질적’ 변화인지 미국인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벤 바그디키언 캘리포니아대 저널리즘스쿨 명예교수 등 많은 언론학자들은 “규제완화가 진행된 뒤 갈수록 더 많은 수의 매체가 등장하고 있으나 이들은 더 적은 수의 소유주에 의해 지배되며,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시장경쟁 활성화 의도가 오히려 집중 심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 제정 이후 미국의 방송시장은 고도로 집중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가령 샌안토니오의 라디오 채널 ‘클리어’는 1996년 40개 방송국을 갖고 있었으나 2002년 1240개로 6년만에 30배 이상 증가했다. 또 타임워너,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 베텔스만, 바이어컴 등 5개 거대미디어 기업이 현재 미국 뉴스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1980년 시엔엔(CNN)을 창설한 테드 터너는 200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매체시장이 집중된 환경이었다면 시엔엔을 시장에 안착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방통신위원회는 신문사가 티브이나 라디오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뉴스의 품질을 높이고 더 많은 양의 지역뉴스와 공공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교차소유를 통해 결합된 사업자가 시장에서 독립적인 다양성을 감소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시민단체들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은 대부분 기존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거나 그들로부터 콘텐츠를 받기 때문에 교차소유가 완화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뉴스는 지역적인 것이 아니어서 지역다양성에 공헌하는 점이 적다는 지적도 쏟아져 나왔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미국인들은 두번의 교차소유 완화 논란을 통해 무엇보다 ‘여론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욱 확고히 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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