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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이름뿐인 ‘공공병원’…예산 반토막

등록 2009-12-14 14:19수정 2009-12-14 15:39

병실은 빗물 새고, 환자용 승강기도 없고…
민간병원 문전박대 받는 기초생활권자 건강 위협
“공공의료 위축” 비판에도 정부는 예산 42%나 깎아




지난 11일 강원 삼척시 삼척의료원. 6인 병실에서 만난 김아무개(53)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10년 전 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김씨는 그 뒤 교통사고까지 당해 척추 수술만 세 차례나 했다. 아내가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 돌봐줄 사람도 딱히 없는 처지다.

김씨는 20일 전 허리 통증을 심하게 느껴 집에서 가까운 민간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료급여 환자라고 했더니 ‘오후에 와라’, ‘병상이 꽉 찼다’ 등의 핑계를 대며 받아주지 않았다”며 “정말 무섭고 서러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곳마저 없다면 나 같은 사람들은 아플 때 찾아갈 곳이 전혀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씨 같은 저소득층 환자에게 전국 13개 시도의 34개 지방의료원과 6개 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은 큰 울타리가 되고 있다. 민간병원은 당장의 수익이 중요한 만큼, 건강보험 환자보다 수가가 낮고 비급여 진료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의료급여 환자를 부담스러워한다.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 통계를 보면, 지방의료원은 전체 입원환자 가운데 의료급여 환자 비율이 41.8%로, 민간병원(13.2%)의 세 배를 웃돈다.

서민의 처지에서도 공공병원은 반가운 존재다. 입원이 손쉬울뿐더러, 꼭 필요한 진료만 하고 비급여 항목을 늘리지 않는 탓에 진료비가 민간병원의 65~88% 수준이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김씨 같은 환자들이 안심하고 의료원을 찾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예산을 거의 ‘반토막’ 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배정한 이 분야의 내년도 예산은 259억1200만원으로, 올해 본예산 448억1800만원(추경 포함 539억1800만원)에 견줘 42%가 줄었다. 지방의료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려 했던 복지부의 ‘보호자 없는 병원’ 예산 34억원도 기획재정부 협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다행히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정부 예산안에 문제가 많다’며 공공병원 지원예산을 611억원으로 올려놓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결특위에서 상임위 증액 예산이 깎이는 것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의료원은 열악한 상태다. 만성적인 적자와 낡은 시설·장비, 의료진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점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의료원 34곳 중 29곳이 적자를 냈고, 그 액수는 414억원에 이른다. 누적적자는 5000억원이 넘는다. 박찬병 삼척의료원장은 “정부는 체계적인 지원도 없이 공공성은 지키되 흑자를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직원들 월급 주기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삼척의료원의 경우 장비가 비싸고 공간이 부족해 분만실을 없앴고, 내년에 노후한 위내시경 장비 등을 교체하려던 ‘꿈’도 접었다. 경기도 의정부의료원은 건물이 낡아 일부 병실엔 비가 새고, 격리병동 화장실은 턱이 높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다. 강원도 강릉의료원은 환자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상태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이런 막무가내식 예산 삭감은 정부가 공공의료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원영 중앙대 교수(예방의학)도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약 11%(병상 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에 견줘 양적으로 형편없고 질적으로도 열악한 수준”이라며 “정부가 공공병원 상황을 꼼꼼히 살펴, 사회안전망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국가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이렇게 줄어든 것 같다”며 “정부도 공공의료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만큼, 발전 방향을 세우고 예산 확보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척/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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