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권리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생활보장위원회’ 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최저생계비의 대폭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복지부에선 2011년도 최저생계비를 결정하기 위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최저생계비로 한 달] 달동네 빈곤리포트 ③ 장수마을
‘부양의무자’ 제도의 덫
‘부양의무자’ 제도의 덫
65살이상 45% 240만명 빈곤
기초생활수급자는 41만명뿐
“자식 있단 이유로 지원 안돼” 빈곤층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면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역사가 짧아 아직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지 못하는데다, 건강·주거·교육·돌봄 등 사회서비스 체계도 미흡한 탓이다. 빈곤층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지난 10년 동안 전체 국민의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예산부담으로 인해 수급자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세대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워 체감하는 빈곤의 강도가 더 심하다.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비율)이 15%인데, 65살 이상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5.1%나 된다. 국내 노인 수가 535만명이므로, 이 가운데 240만명이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중 65살 이상 노인은 고작 41만명(2009년 기준)이다. 200만명에 가까운 노인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 ‘부양의무자’라는 덫에 걸린 노인들 서울 삼선동 ‘장수마을’에 사는 박영희(79·가명)씨는 아들 얘기가 나오자 눈물만 뚝뚝 흘렸다. 박씨는 아들이 셋이다. 마흔에 이혼을 했고, 아이들은 남편이 키웠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해준 게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혼을 했지만 부양의무자인 아들이 있기 때문에 박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박씨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에 막내아들이 가끔 보내주는 15만~20만원으로 버틴다. 첫째와 둘째는 가정형편이 어렵다. 설령 아들 모두가 넉넉하게 산다고 해도 박씨는 “미안해서 무엇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박씨가 사는 반지하 방은 창문이 작아 낮에도 불을 켜야 한다. 쥐가 돌아다녀 한여름에도 방문을 닫고 지낸다. 방은 ‘찜통’이다. 그래도 박씨는 불평을 할 수 없다. 박씨의 집은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데, 집주인이 이사를 나가고 집이 비어 있는 동안 양해를 얻어 무료로 사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당뇨와 관절염이 심하다. 침값과 약값으로 월 5만원 넘게 들어간다. 그는 “몸이 아픈데도 늘 아등바등 살아야 하니 힘들다”며 “이 집이 헐리기 전에 죽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미숙(64·가명)씨는 84살 어머니와 산다. 김씨는 6남매인데도 다들 형편이 어려워 김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김씨는 “돈이 없어 죽을 만큼 힘든데, 자식이 있다고 아무런 지원을 맏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김씨 모녀는 13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산다. 집값은 싸지만 보일러가 없다.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겨울엔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김씨는 “아픈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84살 노모는 신경통에 부정맥이 있어 매일 약을 먹는다. 약값과 진료비 등으로 매달 10만원이 들어간다. 한 달 전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김씨는 어머니한테 나오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에 자신이 벌어오는 30만~4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쌀과 반찬, 전기세, 수도료 등을 아껴 써도 늘 돈이 부족하다. 김씨는 “어머니한테 미안하지만 약값 때문에 먹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나도 좀 있으면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될텐데…”라고 탄식했다. 정부, 부양자 기준완화 시늉
사각지대 해소 의지 안보여
전문가 “기준 폐지 검토해야” ■ ‘부양의무자 완화’ 시늉만 하는 정부 보건복지부는 소득과 재산을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지만, 부양의무자 제약에 걸려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03만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복지부도 부양의무자 문제가 심각하다며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현행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보면, 수급자(부모)와 부양의무자(자녀) 각각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3배 이상을 자녀가 벌면 부모의 수급 자격이 제한된다. 예컨대 4인 가구의 가장한테 홀어머니가 있는데, 자식의 월 소득이 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243만원)를 넘으면 홀어머니는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복지부는 130% 기준을 150%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확정될 경우 4만명 정도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올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요구하면서 내년 기초생활급여 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를 올해와 마찬가지로 163만2000명으로 책정했다. 이 때문에 복지부가 흉내만 낼 뿐 사실상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10월에도 부양의무자의 재산기준 등을 완화한 바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 빈곤층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예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수급권자 자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빈곤층을 일단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하되, 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지난 6월 발표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적절성 평가’ 보고서에서 “국민 의식조사를 보더라도 70% 이상의 국민이 빈곤노인에 대한 부양은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빈곤노인에 대한 수급자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기초생활수급자는 41만명뿐
“자식 있단 이유로 지원 안돼” 빈곤층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면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역사가 짧아 아직 사회안전망 구실을 하지 못하는데다, 건강·주거·교육·돌봄 등 사회서비스 체계도 미흡한 탓이다. 빈곤층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지난 10년 동안 전체 국민의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예산부담으로 인해 수급자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세대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워 체감하는 빈곤의 강도가 더 심하다.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비율)이 15%인데, 65살 이상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5.1%나 된다. 국내 노인 수가 535만명이므로, 이 가운데 240만명이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중 65살 이상 노인은 고작 41만명(2009년 기준)이다. 200만명에 가까운 노인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 ‘부양의무자’라는 덫에 걸린 노인들 서울 삼선동 ‘장수마을’에 사는 박영희(79·가명)씨는 아들 얘기가 나오자 눈물만 뚝뚝 흘렸다. 박씨는 아들이 셋이다. 마흔에 이혼을 했고, 아이들은 남편이 키웠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해준 게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혼을 했지만 부양의무자인 아들이 있기 때문에 박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박씨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에 막내아들이 가끔 보내주는 15만~20만원으로 버틴다. 첫째와 둘째는 가정형편이 어렵다. 설령 아들 모두가 넉넉하게 산다고 해도 박씨는 “미안해서 무엇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박씨가 사는 반지하 방은 창문이 작아 낮에도 불을 켜야 한다. 쥐가 돌아다녀 한여름에도 방문을 닫고 지낸다. 방은 ‘찜통’이다. 그래도 박씨는 불평을 할 수 없다. 박씨의 집은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데, 집주인이 이사를 나가고 집이 비어 있는 동안 양해를 얻어 무료로 사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당뇨와 관절염이 심하다. 침값과 약값으로 월 5만원 넘게 들어간다. 그는 “몸이 아픈데도 늘 아등바등 살아야 하니 힘들다”며 “이 집이 헐리기 전에 죽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미숙(64·가명)씨는 84살 어머니와 산다. 김씨는 6남매인데도 다들 형편이 어려워 김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김씨는 “돈이 없어 죽을 만큼 힘든데, 자식이 있다고 아무런 지원을 맏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김씨 모녀는 13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산다. 집값은 싸지만 보일러가 없다.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겨울엔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김씨는 “아픈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84살 노모는 신경통에 부정맥이 있어 매일 약을 먹는다. 약값과 진료비 등으로 매달 10만원이 들어간다. 한 달 전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김씨는 어머니한테 나오는 기초노령연금 9만원에 자신이 벌어오는 30만~4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쌀과 반찬, 전기세, 수도료 등을 아껴 써도 늘 돈이 부족하다. 김씨는 “어머니한테 미안하지만 약값 때문에 먹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나도 좀 있으면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하게 될텐데…”라고 탄식했다. 정부, 부양자 기준완화 시늉
사각지대 해소 의지 안보여
전문가 “기준 폐지 검토해야” ■ ‘부양의무자 완화’ 시늉만 하는 정부 보건복지부는 소득과 재산을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지만, 부양의무자 제약에 걸려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03만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복지부도 부양의무자 문제가 심각하다며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현행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보면, 수급자(부모)와 부양의무자(자녀) 각각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의 1.3배 이상을 자녀가 벌면 부모의 수급 자격이 제한된다. 예컨대 4인 가구의 가장한테 홀어머니가 있는데, 자식의 월 소득이 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243만원)를 넘으면 홀어머니는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복지부는 130% 기준을 150%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확정될 경우 4만명 정도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올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요구하면서 내년 기초생활급여 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를 올해와 마찬가지로 163만2000명으로 책정했다. 이 때문에 복지부가 흉내만 낼 뿐 사실상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10월에도 부양의무자의 재산기준 등을 완화한 바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 빈곤층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예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수급권자 자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빈곤층을 일단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하되, 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지난 6월 발표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적절성 평가’ 보고서에서 “국민 의식조사를 보더라도 70% 이상의 국민이 빈곤노인에 대한 부양은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빈곤노인에 대한 수급자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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