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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내 인생의 멘토 두 분의 선생님

등록 2006-06-25 20:40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람은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 삶의 온갖 굽이에서, 누구와 혹은 무엇과 만났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꿔 놓기도 한다. 그런 만남이 있었을 당시에는, 그 만남이 자신의 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그 만남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할 정도인 경우도 있다. 크고 중요한 만남이 아니라도, 마음속에 배경처럼 남아 삶의 의미를 늘 되돌아보게 하는 만남도 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두 번의 ‘큰 만남’이 있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교실에 남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더니, 양복을 입은 사람 대여섯 명이 사과 상자를 하나씩 메고 교실로 들어섰다. 한 신사가 교단으로 올라서더니 온화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시골에 작은 과수원을 하나 마련했는데, 올해 첫 수확이 있었다, 처음 딴 사과를 우리 아들들에게 먹이고 싶어 이렇게 메고 왔다, 맛있게 먹고 열심히 공부하기 바란다. 그 신사는 바로 내가 다닌 학교의 이사장이었다. 나는 지금도 사과를 나누어 줄 때의 그분의 온화하고 애정 어린 눈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두 번째의 만남은 음악 선생님이었다. 건물 뒤 숲속 체육관에 있던 음악실은 공간 자체가 낭만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음악실로 가는 복도에서 울리던 피아노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음악 선생님은 교과서의 노래만이 아니라 교과서 밖의 노래도, 때로는 자신이 작곡한 노래까지도 가르쳐주곤 했다.<꼬부랑 할머니>와 같은 전래동요풍의 노래도, 파인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강이 풀리면>이라는 노래도 다 선생님이 만들어 들려준 곡이었다. 시골에서 살아 음악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터라, 음악 하면 진저리부터 칠 만큼 음치였던 내게, 음악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기회를 만들어준 분이 바로 음악선생님이셨다. 나중에 대학에 다닐 때, 이영도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4월 혁명의 노래 ‘진달래’가 선생님이 만든 것임을 알고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 그분들의 나이에 가까운 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그분들과 비슷해져 있을까?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마음,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마음이 그분들의 반만이라도 닮아 있기나 한 것일까? 세월이 흐른 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배경처럼 남아있을 만남을 만들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교육에 대한 온갖 문제가 이틀이 머다 하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요즘, 나는 내 청춘의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때의 만남을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준 두 분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교육에 대한 내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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