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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큰일’ 겪은 뒤 몸 아프다는 아이 ‘외상후 증후군’ 의심해야

등록 2006-07-30 20:58수정 2006-07-31 18:38

이나미 어른 생각 아이 마음

신경정신과를 찾는 환자들 중에는 어린 시절 겪었던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오래 간직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군 복무중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홀로 되신 어머니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이들, 삼풍아파트나 성수대교참사 등을 경험한 당사자나 사망자의 가족들, 지하철 화재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 멀게는 베트남 전쟁이나 한국 전쟁·제2차 세계대전까지 한국인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감당하기 힘든 외상들이 참으로 많다. 수해를 겪은 뒤, 집과 일터가 초토화 되는 경험들은 정신적 외상들만큼이나 어른이나 어린이들 모두에게 힘든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자녀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만큼이나 아끼는 책과 교과서, 옷과 가방을 잃고 멍한 마음으로 방학을 보낼 학생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특히 극심한 입시 경쟁의 와중에 몇 달의 시간을 어이없이 흘려 보내고 자포자기하는 학생들이 생길까봐 걱정이다. 입학 산정에서, 수해같은 재난 상태에서 공부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가산점이라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정신과에서는 수해나 지진, 전쟁등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상을 겪은 후 찾아 오는 정신증상을 외상후 증후군(Post-traumatic syndrome)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외상후 증후군을 앓게 되면, 불안, 공포, 우울감, 불면, 건강염려증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직접 호소하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조금 더 증상이 복잡하다. 학습장애, 대인관계 위축과 함께 신체적 증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눈이 잘 안 보인다, 어지럽다”라고 말하니, 정신질환 보다는 신체 질환을 의심하기 십상이다. 또 반복적으로 악몽을 꾸거나 자면서 깜짝 놀라는 야경증의 증상 등을 보여, 예전에는 재난 중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붙은 것(빙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재난을 당한 어른들로서는 우선 먹고 살아 남아야 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의 자잘한 심리적 고통에 세밀하게 관심을 두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 외부의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면,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도 나빠지기 쉬워 아이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면서 자아가 강하게 단련되는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으려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불안, 좌절감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인정하고 포용해 주어야 한다. 또, 어른이나 아이 모두 예상치 못했던 재난의 후유증을 혼자 삭히려만 말고 주변에게 하소연도 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일단 외상후 증후군을 앓게 되면 생각보다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반짝 관심’이 아닌 장기적인 사회 보완 시스템, 재난 보험 등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지붕 없는 가건물에서 별을 보며 잠들어야 했던 시절, 막힌 하수구에서 집안으로 역류하던 물을 막느라 폭우 속에 사투를 벌이던 무용담을 남편은 지금도 가끔 이야기한다. 유학온 도시에서는 돈 없고 집 없는 설움에 시달리고, 고향에 돌아가서는 거름통 지고 농사 짓던 경험이 나름대로는 자신를 강하게 키워 준 자산이라고도 자부하는 것 같다. 그 때는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금보다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수해 현장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어른들과,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어린이들이 엄청난 고통을 딛고 당당하게 다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교육적·제도적 장치가 아쉽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namile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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