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클리닉 /
고등학교 1학년인 희수는 공부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드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냥, 집중이 잘 안돼요. 딴 생각이 많이 나서…”라고 대답한다. ‘딴 생각’이라는 표현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의미가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공부하는데 가장 힘드는 것으로 ‘딴 생각’을 꼽은 것을 보면 어딘가 앞뒤가 맞질 않는 느낌이다.
“딴 생각이라고? 글쎄, 선생님도 고민이 많을 땐 공부가 잘 안되더라. 요즘 고민되는 일이 생겼나 보다.” 희수의 ‘딴 생각’을 ‘고민’으로 승진시켜 보았다. 공부할 때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라면 그 정도 승진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승진인사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그냥… 남자 문제에요. 그 애가 사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이에요. 그렇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생각을 안하려고 해요”라며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상당히 ‘고민’이 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딴 생각’으로 취급하고 그냥 무시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희수야! 솔직하게 한 번 말해봐. 그 남학생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생각이 안 나니?” 희수는 조금 망설이다, “아뇨! 책을 봐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그 친구 생각이 자꾸 나요”라고 대답한다. 그 ‘고민’은 항아리 뚜껑 덮듯이 꾸욱 눌러두거나, ‘딴 생각’ 정도로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지금까지 희수가 그런 취급을 하자, 이에 분노(?)해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는 듯 희수가 공부하는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공부하는 걸 상당히 방해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전략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생각을 ‘고민’으로 인정해주고, ‘고민’에 걸맞게 대우도 해주는 것이다. “희수야, 생각을 안 하려고 피해도 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하루 세번, 밥을 먹고 나서 30분 정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집중적으로 생각한다. 그 때는 다른 생각은 안하고 오직 이 문제만 생각한다’와 같이 말이야.”
‘그렇게 하면 그 생각이 더 자주 찾아와 방해하면 어쩌나?’ 희수의 얼굴 표정엔 그런 의문이 떠오르는 것 같다. 처음엔 더 자주 오겠다고 떼를 쓰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귀빈 대우를 받으며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다음 약속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정해진 시간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무시하려고 했던 생각, 차라리 마음의 준비가 된 그 시간에 만나 보자. 피하기보다는 한번 친해져 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생각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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