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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알 깨고 새가 날듯,허물 벗고 뱀이 크듯…

등록 2007-03-04 17:48수정 2007-03-04 17:52

부성적 양심과 모성적 양심이 우리 내면 안에 공존하는 덕분에 우리는 따뜻하지만 엄격하고,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며,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이것이 헤세의 <데미안>에 담긴 ‘성장’의 의미다. 그림 출처:<데미안>(소담 펴냄)
부성적 양심과 모성적 양심이 우리 내면 안에 공존하는 덕분에 우리는 따뜻하지만 엄격하고,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며,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이것이 헤세의 <데미안>에 담긴 ‘성장’의 의미다. 그림 출처:<데미안>(소담 펴냄)
문학속 철학산책 /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 본 ‘성장’의 의미

자라면서 한번쯤 성장의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까? 바람에 휩쓸리는 마른 풀처럼 갈 길 몰라 방황하며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정신의 젖니가 빠지고 간니가 나는 아릿한 시기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출간되자마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맞먹는 파문’을 일으키는 성공을 거두었고, 2차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배낭 속에 반드시 한권씩 들어있었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바로 이런 성장통에 관한 치열한 보고서다.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성장소설이다.

소년 싱클레어는 세상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인식하고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한다. 헤세는 이후의 작품인 <싯달타>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이 두 세계를 각각 ‘이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로 바꾸어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서성이며 방황하는 것이 비단 싱클레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일로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밝은 이성의 충복이지만 동시에 어두운 감성의 노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나타나 세상을 두개의 세계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인정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라는 메시지도 전한다. 아브락삭스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함께 소유하고 지배하는 신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반쪽만의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반쪽에 대한 동경과 함께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편협한 세계를 깨고,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이 함께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충고한 것이다. 그리고 싱클레어를 자신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에게 인도한다.

헤세가 창조한 인류의 이상인 에바 부인은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 정신적 숭배와 동물적 본능이 뒤섞인 존재다. 한마디로 다분히 부성적이며 동시에 모성적인 존재다. 이때 부성적인 것이란 이성적인 것, 곧 지식이고 법률이며 질서와 책임, 훈련과 모험 등을 의미하고, 모성적인 것이란 감성적인 것, 곧 따뜻함이고, 음식이며, 만족과 쾌락, 자유와 안전 등을 상징한다. 결국 헤세에게 있어, 인간이 성장해 하나의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감성과 이성, 따뜻함과 차가움, 자유와 책임 그리고 안전과 모험을 동시에 소유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 인간의 내면 안에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를 간직하고 지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독일출신 정신의학자 에리히 프롬에게서 보다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인간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내면에 그들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곧 인간의 성장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자신의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둘을 자신의 내면에 간직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인간 내면 안에 간직돼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각각 ‘부성적 양심’과 ‘모성적 양심’이라고 이름지었다.


부성적 양심은 우리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반면에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고 위로한다. 곧, 부성적 양심은 ‘…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모성적 양심은 ‘…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부성적 양심을 통해 복종, 성실성, 절제, 인내, 책임 등을 배우고, 모성적 양심을 통해서 자위, 자존심, 자유 등을 배운다.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부성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모성적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서로 균형을 이뤄 스스로 성숙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만일 어느 누가 자신의 내면에 부성적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외적으로는 냉정하고 난폭한 사람이 될 것이며 내적으로는 강박신경증 등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모성적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외적으로는 따뜻하지만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판단력을 잃기 쉽고 내적으로는 히스테리나 알콜중독 같은 각종 중독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자신을 종용하거나 꾸짖는 부성적 양심에 의해 외적으로 강해질 수 있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성적 양심에 의해 내적으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성적 양심과 모성적 양심은 우리의 내면 안에서 서로 대립하면서도, 마치 ‘낮과 밤이 신의 동일한 뜻을 이루는데 함께 일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성숙한 인격을 이루는데 함께 이바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양심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따뜻하지만 엄격하고,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며,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프롬이 말하는, 그리고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서 드러난 ‘성장’의 의미다.

김용규/자유저술가, 〈알도와 떠도는 사원〉 저자
김용규/자유저술가, 〈알도와 떠도는 사원〉 저자
물론 이런 성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싱클레어가 그랬듯이, 알이 깨어져 새가 날듯, 허물이 벗어져 뱀이 성장하듯, 몇 번이고 주어진 자기가 부서지는 절망과 고통을 견뎌야 이뤄지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런 성장이 없는 유아적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신이 우리에게 절망과 고통을 보내는 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라는 헤세의 말을 떠올리며 한번 생각해보자!

김용규/자유저술가,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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