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코미디 같은’ 교육개편 바로잡자

등록 2008-06-08 17:02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이명박 정부가 처음에는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며 기세등등하게 나왔지만, 결국 교육부를 과학기술부와 통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교육부가 과기부를 먹어버린’ 형국을 초래했다. 어쨌든 교육부는 예나 지금이나 총괄적인 교육전략 수립이나 조정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반면 ‘제 밥 챙기기’는 차곡차곡 잘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 많이 발생하는데, 외국어고의 기능을 재정립하는 대신 국제고를 신설한다든가, 과학고를 개편하는 대신 영재고를 따로 만드는 걸 보면 ‘정말 교육부를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교육비 폭증을 불구경하듯 보다가 겨우 작년에야 사교육 대책팀을 꾸린 걸 보면, 뭔가에 대응하는 속도도 참으로 인상적인(!) 수준이라 하겠다.

교육부는 특히 초·중·고 교육과정과 관련해 거의 완벽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기능 부전이 심각하다. 교과목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지만 이해집단들에 둘러싸여 이를 조정하지 못한다. 교육과정(특히 교과서) 내용이 지나치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다. 예를 들어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할 수 있게 하라’는 식으로 대강의 목표를 정해주는 게 아니라 어떤 단어와 숙어와 문장을 가르쳐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정해놓는 식이다. 그러니 교사들이 창의적인 수업방식을 발전시킬 여지가 적다. 선진국에서는 아예 교과서를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꽤 많은데, 이것은 학생의 수준과 여건에 맞는 교사의 창의적 적응능력을 살려온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배워야 하는 내용은 또 왜 이렇게 많은가? 너무 많은 분량을 의무적으로 다 가르치도록 해놓으니 교사들은 주마간산식·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게 되고, 탐구형·토론형 교육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린다. 이처럼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의 도입을 체계적으로 가로막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답 맞히기식 교육을 보완한답시고 수행평가와 서술형 시험 출제를 의무화하니, 이율배반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세부적으로 교육과정 내용을 들여다보면 교육부가 조정기능을 방임한 증거가 곳곳에 드러난다. 학교체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돼 있는데 국민공통기본교과는 10학년(고1)까지로 규정되어 있다든가, 초등학교 6학년 내용이 중학교 1학년 내용보다 어려운 경우가 꽤 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대학 쪽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문·이과 공통수학에서 미적분을 제외했던 것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르쳐온 과학 과목의 경우 5~7차에 걸친 교육과정 개편이 도대체 왜 이뤄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특히 7차 교육과정에서 고2 이과(자연계열) 학생들이 모두 배우는 화학Ⅰ 교과과정은 나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없이 많은 화학 선생님들한테서 이구동성으로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원자·분자, 주기율표, 화학결합 등으로 구성된 원리적 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물·공기·금속…’ 이런 식으로 소재 중심으로 대단원을 만들어놓은 것이 마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체계를 연상시킨다. 이제 관성적이고 무원칙한 교육과정 개정에서 벗어나, 교육과정의 목표와 내용에 대한 토론과 협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곰TV 강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