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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양성모음·음성모음의 마법

등록 2008-06-29 15:51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중2~고1]

32. 의성어와 의태어 ②
33. 의성어와 의태어 ③
34. 의성어와 의태어 ④

의성어와 의태어는 우리네 말과 글에서 여러 가지 구실을 한다. 아래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지 느껴보기 바란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방긋방긋 떠오르는 미소. 깔깔 웃으며 두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두 팔로 바닥을 짚은 채 통통한 몸을 일으키느라 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그러고는 포동포동 살이 오른 두 다리를 달달 떨면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니 두 발이 모래밭에 폭폭 빠진다 ….

동네 놀이터 모래밭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거의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위 글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한국어 사용자로서 부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래 글은 어떨까.


-둥글넓적한 얼굴에 벙긋벙긋 떠오르는 미소. 껄껄 웃으며 두 눈을 껌벅거릴 때마다 시꺼먼 눈동자가 번쩍거린다. 두 팔로 바닥을 짚은 채 퉁퉁한 몸을 일으키느라 허옇던 얼굴이 벌겋게 물든다. 그러고는 푸둥푸둥 살이 오른 두 다리를 덜덜 떨면서 어정어정 걷기 시작하니 두 발이 모래밭에 푹푹 빠진다….

혹시, 우리나라 씨름판이나 일본의 스모 경기장에서 상대에게 패해 모래판에 널브러져 있다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퇴장하는 거구의 운동선수가 떠오르지 않았는가?

위의 두 글에서 각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분은 완벽히 똑같다. 그런데도 이렇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다른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두 글에서 서로 다른 말들을 뽑아내 짝을 지어보면 이렇다: 동글납작하다-둥글넓적하다, 방긋방긋-벙긋벙긋, 깔깔-껄껄, 깜박거리다-껌벅거리다, 반짝거리다-번쩍거리다, 통통하다-퉁퉁하다, 하얗다-허옇다, 발갛다-벌겋다, 포동포동-푸둥푸둥, 달달-덜덜, 아장아장-어정어정, 폭폭-푹푹.

열두 쌍 중 절반인 여섯 쌍이 의성어나 의태어고, 나머지는 모두 흉내말 계통의 형용사들임을 알 수 있다. 방금 제시한 낱말쌍들은 국어학자들이 ‘작은말-큰말’로 분류하는 것들이다.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아’나 ‘오’ 모음이 들어간 말들은 작은 느낌을 주고, 반대로 ‘어’나 ‘우’ 모음이 들어간 말들은 큰 느낌을 준다. ‘아’와 ‘오’는 느낌이 밝다는 뜻에서 양성(陽性)모음이라 하고, ‘어’와 ‘우’는 느낌이 어둡다는 뜻에서 음성(陰性) 모음이라고 부른다. 양성모음은 느낌이 밝은 만큼 묘사 대상이 비교적 작을 때 써야 어울린다. 반대로 음성모음은 느낌이 어두운 만큼 부피가 큰 대상을 묘사할 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렇게 양성-음성모음의 대립에 속하는 의성어·의태어 쌍으로는 ‘졸졸-줄줄’ ‘하하/호호-허허/후후’ ‘발딱-벌떡’ ‘쏙쏙-쑥쑥’ ‘소곤소곤-수군수군’ ‘올록볼록’ ‘울룩불룩’ ‘오글쪼글-우글쭈글’ ‘알록달록-얼룩덜룩’ ‘말랑말랑-물렁물렁’ ‘퐁당퐁당-풍덩풍덩’ ‘찰랑찰랑-철렁철렁/출렁출렁’ 따위가 있고, 흉내말 계통 형용사로는 ‘폭신하다-푹신하다’ ‘포근하다-푸근하다’ ‘노랗다-누렇다’ ‘파랗다-퍼렇다’ ‘깜깜/캄캄하다-껌껌/컴컴하다’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말은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교체를 통해 느낌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능하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한국어가 그런 재주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가장 중요한 무대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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