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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앙코르 유적지는 왜 400년동안 버려졌을까?

등록 2009-02-08 15:11수정 2009-02-08 15:13

앙코르 유적지는 왜 400년동안 버려졌을까?
앙코르 유적지는 왜 400년동안 버려졌을까?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창의적 문제해결 연습 /

경은이는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공부하던 중 거대한 유적군을 가진 캄보디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많은 이들의 입에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극찬을 받는 앙코르 유적지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앙코르 유적지에 매료된 경은이는 앙코르와트, 바욘, 앙코르톰, 타프롬 등 앙코르의 유적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껴보고 싶어 여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머리말에 쓰여 널리 알려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캄보디아의 역사와 앙코르 유적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경은이는 부푼 기대를 안고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캄보디아의 시엠립에 도착했다. 거대한 유적지를 발로 밟아 가면 천천히 둘러보기 위해 7일 동안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을 구매하고 앙코르 유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첫날, 박세이참크롱, 앙코르톰, 바욘, 바푸온 등 크메르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닿아 있는 석조건축물, 조각상들을 보고 있자니 경외심마저 들었다. 드디어 앙코르 유적 중 대표로 손꼽히는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는 이튿날, 멀리 해자(성 벽 둘레를 파서 연못으로 만들어 놓은 곳) 너머로 사진으로만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았던 앙코르와트가 자신을 억누르는 듯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경은이는 사흗날, 자연과 문명의 대결을 보여주는 듯한, 혹은 자연이 문명을 삼킨 듯한 타프롬을 관람하며 의문점 하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토록 거대하고 화려했던 문명을 이룩했던 왕조는 어떤 이유로 사라졌으며, 또 어떻게 400년 동안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앙코르 왕조(802~1431년)의 쇠락에 관한 기록은 문헌에도 명확하게 기술된 바가 없어 정확하지 않다. 인드라바르만 3세(1295~1307년) 이후 앙코르를 통치한 왕의 이름과 시기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으며 15세기 무렵 앙코르 왕조가 남동쪽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이후 16세기 한 왕조에서 이곳을 도읍으로 정한 왕이 있다고는 하지만, 앙코르 왕국과 앙코르 유적은 밀림 속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은이는 앙코르 유적지를 관람하는 일주일 내내 이 거대한 왕국이 어떤 이유로 버려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골몰했다. 역사에 따르면 인접한 타이(태국)의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패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 거대하고 웅장한 석조 건물은 동남아시아 어떤 왕조의 것보다도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그대로 포기했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생각해 보자.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인류의 유산인 앙코르 유적지는 어떤 이유로 밀림 속에서 400년 동안 묻혀 있게 되었을까? 인간 혹은 사회가 자신들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거처를 포기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 창의적 문제해결 연습 답안

앙코르 왕조의 멸망에 대해 대표적으로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 타이 지역의 아유타야족과의 전쟁 설이다. 앙코르와트 벽화를 보면 앙코르족의 군인들은 제대로 된 갑옷을 입지 않고 있고 방어도구도 나무로 만든 방패 정도다. 이에 반해 아유타야족은 상대적으로 훌륭한 전쟁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앙코르족이 전쟁에서 지는 일이 많았고, 결국 유적을 포기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유타야족이 훌륭한 건축물과 거대 도시를 전유물로 쟁취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둘째, 지나치게 거대한 도시를 유지·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동시대의 런던 인구의 몇 십 배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도시였다. 게다가 이 지역은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로 논농사의 발달과 함께 뛰어난 저수시설이 필요했으나 앙코르와트 저수시설은 지나치게 섬세해 조금이라도 수리나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작동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 또한 의문이 남는다. 과연 민감한 저수시설의 조작이 그들의 선조로부터 수백 년간 이룩해온 문명을 포기할 만큼 심각했느냐는 것이다.

셋째, 환경 파괴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교와 논농사를 주로 하는 앙코르족은 당연히 식량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저수시설을 비롯한 엄청난 규모의 도시를 지었지만, 소실된 열대우림으로 인한 환경적 재앙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정확히 어떤 환경적 재앙인지 제시해주지 못한다. 추가적으로 콜레라, 홍역,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이 원인일 수도 있다.

요컨대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이 옳다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설득력이 부족한 측면이 세 가지 모두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오랜 시간 일구고 다듬어 온 생활터전을 버린 것은 그곳에 생존에 큰 위협이 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위협 요소는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으며 정치·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거대한 앙코르 유적지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함으로써 사회가 쇠락하는 이유를 이해하면 역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는 조건도 알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각자 다방면에서 앙코르 왕조가 이 거대한 도시를 버리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어떤 왕조도 이 거대한 도시를 차지하지 않았던 이유를 상상해 보자.


대표강사 류경구
대표강사 류경구
※ 매주 목요일 클래스온 누리집(www.class-on.com)에서는 문제 출제자가 직접 풀이한 동영상을 제공합니다. 문제에 대해 궁금한 점은 1644-0020으로 문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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