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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열등생’귀빈으로모십니다

등록 2009-04-12 21:06수정 2009-04-26 21:37

등원중의 교육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 대책의 ‘교과서’가 될 듯하다. 청소년 방과후 공부방에서 학생들과 수업하는 이영주 교사. 작은 사진은 공부방에 설치된 냉장고·싱크대(위)와 개인사물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등원중의 교육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 대책의 ‘교과서’가 될 듯하다. 청소년 방과후 공부방에서 학생들과 수업하는 이영주 교사. 작은 사진은 공부방에 설치된 냉장고·싱크대(위)와 개인사물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학력미달 학생위한 등원중의 ‘희망교실’

지난 8일 오후, 서울시 강서구 등원중의 한 교실. 학생 10명이 영어 수업을 하는 중이었다. ‘소수 정예’ 수업이다. 바닥은 온돌 마루로 돼 있어 학생들은 실내화를 신지 않았다. 교실 한쪽 벽면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정수기 등이 있다.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질문을 틈틈이 받아 주는 전담교사 자리도 있다. 교장실보다 좋은 교실에서 학생들은 영어와 수학 수업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8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갈 때는 근처 지구대 경찰관이 귀가를 돕는다.

‘귀빈’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이들은 누굴까? 우등생일까? 아니다.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권자 가정의 학생들로 대개는 기초 학습이 부족한 이들이다. 등원중이 올해 처음 문을 연 ‘청소년 방과후 공부방’의 얘기다.

중학교 교문에도 특목고 합격자를 알리는 펼침막이 붙는 때다. 우등생이 학교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고 ‘열등생’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그러나 등원중은 다르다. 등원중의 얼굴은 열등생, 두 차례 일제고사를 치른 교육당국은 이들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라고 부른다.

저소득층 자녀가 전체의 1/4
학생여건 고려해 ‘맞춤형’ 교육
체계적 지도하에 성적 ‘쑥쑥’

올해는 ‘방과후 공부방’ 개설
온돌교실서 전담교사가 돌봐
‘입학땐 열등생 졸업땐 우등생’

실제로 등원중이 입소문을 탄 것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 덕이다. 지난 2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나왔을 때다.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른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서울시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국어 과목은 4.6%로 서울시 평균 11.2%의 절반 수준이었다. 강남지역 평균 5.6%보다 낮은 비율이다. (표1 참조)

등원중이 낸 결과가 남다른 이유는 학교를 둘러싼 주변의 교육 여건 때문이다. 등원중 전교생의 4분의 1(24.8%)은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무료급식 대상자다. 등원중의 무료급식 대상 학생 비율은 서울시 평균 8.2%에 견줘 세 배나 높다. 실제로 등원중에 입학하는 신입생의 학력은 서울시 평균보다 낮다. (표2 참조)

등원중의 교육은 입학할 때는 울지만 졸업할 때는 웃는 교육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은 졸업할 때 크게 줄어든다. 김옥희 교감은 “원래 한 학년에 영어 한 반, 수학 한 반을 만들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위한 ‘소그룹 교과지도’를 하는데 올해 3학년은 그 정도로 뒤처지는 학생들이 없어 반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만든 ‘청소년 방과후 공부방’은 지난해까지 소그룹 교과지도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을 벗어난 중3 학생들이 모인 반이다. 정홍배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크게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다만 입학할 때보다 졸업할 때 학력이 많이 향상된 것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런 등원중의 결과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까지 방문을 검토했다고 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이 밀집한 지역을 가려내 맞춤형 지원 대책을 세우겠다는 교과부한테 등원중이 해법의 실마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등원중의 반전을 가능하게 했을까? 등원중은 학생이 기초학력에 미달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우선 파악한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여느 학교와는 방법론이 다르다. 정홍배 교장은 “정확한 원인 진단이 된 뒤라야 같은 쌀을 갖고도 누구한테는 밥을 주고, 죽을 주고, 과자를 만들어 주는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이민지(가명)양이 좋은 사례다. 이혜정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는 “민지가 지난해 전학을 왔을 때만 해도 수학은 8점, 영어는 12점씩 받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었다”며 “그런데 민지한테는 학습 지원보다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정서적인 지원이 우선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민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고 어머니는 안 계시다. 가정에서 부모의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해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제 몸을 씻고 옷을 깨끗이 입는 ‘청결 지도’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초학력 미달의 원인이 진단된 뒤에는 학교 안팎으로 연결된 교육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필요한 지원을 한다. 민지는 대학생 멘토링과 진로체험 동아리 활동을 지원받았다. 이화여대 학생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공부를 도왔다. 민지는 “언니랑 친구 두 명이랑 같이 모임을 하니까 말하기도 편하고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며 “언니가 학교 축제도 데려가고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진로체험 동아리는 강서청소년수련관에서 지원했다. 지난 1년 동안 매달 토요휴업일이면 아나운서, 제과제빵, 연극인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했다. 학교는 학습을 맡았다. 학교의 인문교육부 교사들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모아 방과후에 영어와 수학을 집중 지도 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되기 일쑤인 민지와 같은 학생을 학교의 주인으로 세운 데는 정홍배 교장의 구실이 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부모나 학교의 관심과 지지를 받지만 가난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제가 아니면, 학교 교사들이 아니면 안 돼요. 개천에서 용 나게 하려면 학교가 뛰어야죠.” 2007년 9월 부임한 그가 교사들한테 부탁했던 것도 부모의 구실이었다.

나라의 지원도 한몫했다. 등원중은 교과부가 지난 2003년부터 실시해 온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지원사업’(교육복지사업) 대상 학교다. 등원중은 2003년에 지정돼 해마다 평균 1억~1억2000만원 정도의 예산을 받았다. 이혜정 지역사회교육 전문가가 등원중에서 한 학생의 필요에 맞는 다양한 교육적 지원을 매개할 수 있는 것도 이 사업 때문이다. 교육복지사업을 하는 학교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지닌 지역사회교육 전문가가 배치된다.

일제고사를 둘러싼 논란만 증폭될 뿐 평가를 통해 드러난 교육격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실종된 이때, 정부와 학교와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 이룬 등원중의 성과가 숨통을 틔운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바로잡습니다

■ 13일치 ‘열등생 귀빈으로 모십니다’ 기사에서 교육복지사업을 하는 학교에 배치되는 인력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지닌 지역사회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교육, 문화, 복지 분야에서의 활동 및 지역 네트워크 활동 경험이 있는 전문가입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뿐만 아니라 청소년지도사 등 다른 자격증을 가진 실무자나 기타 지역사회교육 관련 경험이 있는 이들이 모두 지원할 수 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복지연구센터에서 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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