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린이도서관에 가면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젖먹이들부터 학습만화책 펴들고 앉은 초등학생들까지 책 읽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가히 조기 영어 교육보다 더한 조기 독서 열풍이라 할 만하다. 사실 이런 열풍의 이면은 책읽기의 가장 센 힘 중 하나가 ‘성적’과 직결된다는 직간접적인 경험과 이론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렇게 조기 독서 열풍으로 자라난 우리 아이들이 왜 예전보다 평균 성적이 떨어진다 하고, 이해력과 공감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까?
외고 선생님인 이웃집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이들마다 독서 편차가 너무 크다. 어렸을 때나 책 열심히 읽어주지, 대체로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 책 안 본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니 어느 아빠 얘기가 떠올랐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초등 6학년 아들에게 초등 마지막 방학이니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어라 했더니 엄마가 “이제 중학생인데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며 남편에게 심하게 면박을 주더라고.
책읽기가 아이들 교육의 만능은 아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용인받을 수 있는 면죄부도 아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책읽기 좋아하는 아이의 잘못? 하나도 없다. 책읽기를 단지 좋은 성적과 대학 입학의 만능키로만 본 주변 어른들의 생각과 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책읽기를 ‘시킨다면’ 아이들에게 책은 지겨운 공부 노동의 하나일 뿐이다.
이제 겨우 초보 학부모인 나 역시 ‘아이가 책 많이 읽어 공부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만 책읽기를 대한다면 독서의 진가를 너무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해저 2만리> <톰 소여의 모험> 등 재미있고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의 책 얘기를 슬슬 해주면 아이가 눈을 반짝인다. 이렇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늑대왕 로보>가 불쌍하다며 다시 읽기 싫어하는 아이라면,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가 불쌍해 울 줄 아는 아이라면 친구 왕따시키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인 공감력과 동정심, 배려심은 학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덕목이다. 무엇보다도 부모조차 모르는 많은 동기와 경험, 상상력으로 아이를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책만 한 친구는 없다. 아이는 부모의 그릇을 넘지 못한다지만, 책은 모자라는 부모의 그릇을 넘치게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동화작가분 강의를 들었는데 제발 책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하겠지, 논술 잘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그거 아니면 이렇게 독서 열풍이 일어날까 싶기도 하지만 설사 책 많이 읽는데 성적 안 나오더라도, 아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책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면 좋겠다. 좋은 대학 졸업하고 성공한 직장인이 되면 인생 고민 끝이던가? 긴 인생 살아가면서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손잡아 줄 수 없을 때, 언젠가 읽었던 책 한 권은 9회말 투아웃의 구원투수처럼 막장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공부해야 되니까 책 그만 읽어!” 이런 말은 하고 싶다가도 꿀꺽, 삼키겠지.
장성아/학부모,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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