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발언대
큰애는 딸이고 중학교 3학년이다. 작은애는 아들이고 중학교 1학년이다. 둘은 각기 다른 중학교로 배정되어 나는 두 학교를 다니며 시험감독에도 참여해 보고 방과후 아이들을 관리하는 봉사도 한다. 올해 작은애 중간고사 시험감독을 하면서 겪은 일이, 지난해 겨울 큰애가 기말고사 때 겪은 일과 연관되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단순하고 사소한 일상이지만 사고의 폭을 조금 넓혀 보면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첫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애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팬티에 똥 쌌어.” 울면서 씻고 옷 갈아입을 동안 기다렸다. 얘기도 울면서 했다. 얘기인즉, 시험 첫 시간이 20분쯤 지나면서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는 고통과 함께 대변이 밀고 나오려고 했단다. 선생님께 ‘배가 아프다’고 말씀드렸더니 ‘참으라’고 하면서 ‘시험 보기 전에 볼일을 보고 왔어야지’라고 책망만 하시고 가버리시더란다. 딸애는 문을 열고 뛰쳐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선생님만 부르기를 세 차례 했으나 처음과 똑같은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고 했다.
급기야 그냥 교실에서 실수를 했고, 시험 시간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화장실에 가서 뒤처리를 하고자 했으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냄새나는 채로 두 시간의 시험을 마저 채우고 집으로 와야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해도 자리에서 꼼짝 않고 붙어 있다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급히 왔다고 했다. 딸애는 친구들이 놀릴까봐 다음날 어떻게 학교에 가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난 우선 시험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담임선생님과 상의를 한 후 당시 시험감독이었던 선생님께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도록 부탁했다. 그때 난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학교가 시험중에 생리 현상으로 인한 모든 불편함과 불이익은 온전히 아이 혼자서 감당하도록 돼 있는 줄 알았다.
올봄 둘째아이 중간고사 시험감독 보조교사로 들어갔다. 20분쯤 지나니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배가 아파요.” 담당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 여학생에게 사정을 소상히 물어보신 후 나에게 그 여학생과 동행하여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7~8분 정도 후에 우린 다시 교실에 들어갔고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
우리 큰애는 왜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신뢰의 결핍이다. 부정행위와 연결될까봐 보조교사가 있다고 해도 못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책임감 있게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교사들이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상황 판단력과 대처 능력이 전혀 발휘될 수 없도록 돌아가는 조직 내지는 사회의 시스템과, 그 경직된 사회에서 오로지 정해진 규율에 따라 정해진 대로만 일하도록 기계화한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관료주의적이고 행정 편의주의적인 사회에서 규율과 제도만 있고 사람은 없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 그것도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험이며 교육이란 말인가. 똥까지 제대로 못 누게 하면서. 조경숙/주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 ‘교육발언대’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쓴소리, 단소리의 공간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우리나라 교육과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지의 ‘왜냐면’과 같은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자 원고지 8~9장 분량으로 이름과 소속, 연락처 등과 함께 edu@hani.co.kr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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