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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육발언대] 반장선거는 소중한 ‘민주주의 체험’

등록 2009-05-31 16:55

지난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갔습니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오순도순 피자를 나눠 먹으면서, 문득 작년 이맘때쯤 2학기 반장이 사줬던 피자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지난해 여름이 시작될 즈음, 학교에서 2학기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새로운 학생회장단을 뽑았던 그때였을 겁니다.

대선 혹은 총선 시즌이 되면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듯이, 우리 학교 선거 시즌에도 학생들은 들뜨곤 했습니다. 그만큼 1년 동안 학교를 이끌어 나갈 간부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선거 후에 남는 것이라곤 각 반의 새로운 반장들이 시켜준 피자 박스 더미뿐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반장 선거에서 피자를 3명당 1판씩 쏘겠다는 후보가 부반장으로, 2명당 1판씩 쏘겠다는 후보가 반장으로 ‘정정당당하게’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후보 개개인들의 지도자적 자질이나 공약의 현실성을 평가하기보다, 그들의 끼나 외모, 혹은 키, 심지어 집안을 기준으로 표를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학급회의 시간을 활용해서 겨우 마련한 후보자 연설 시간에, 각 반 교실 풍경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1번 후보는 잘생겼다느니, 2번 후보는 못생겼다느니 하며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은 그나마 낫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심지어 자신과는 일체 상관없는 일인 듯, 그 귀중한 시간에 엠피스리(MP3)를 들으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선거 날을 기회 삼아 해외여행을 간 주제에 당선인을 욕하는, 파렴치한 어른들의 모습이 살포시 오버랩되었습니다.

전국의 중·고등학생 친구들! 무관심 속에서 가볍게 치른 선거라면 반장은, 학생회장은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초딩 선거가 결코 올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누적되고 전래되어온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자랑스러운’ 문화입니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서 이제는 그것의 시비조차 가리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로니컬한 것은 ‘유치한 선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학생들이 아니라 기성세대 어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어른들은 이른바 ‘스카이(SKY) 합격자 수’에 혈안이 되어서 공공연히 학생자치 문화를 ‘공부를 방해하는 것’으로 치부해왔고, 우리는 단지 그분들의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우리한테는 선거가 학생자치 문화라는 말로서가 아닌 ‘우리들만의 추억 만들기’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돼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전국의 중·고등학생 친구들! 어른들이 학생자치 문화를 무시한다고 해서, 문화의 주체인 우리마저 그것을 소홀히 대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해가 갈수록 시험공부만을 진정한 인생 공부로 간주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적어도 우리 학교만큼은 ‘아침에 가는 입시학원’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봐요, ‘공짜로 얻어먹는 피자 몇 조각’과 ‘학창시절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경험’을 맞바꾼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거래일까요?

이방현/재수생,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 ‘교육발언대’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쓴소리, 단소리의 공간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우리나라 교육과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지의 ‘왜냐면’과 같은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자 원고지 8~9장 분량으로 성함과 소속, 연락처 등과 함께 edu@hani.co.kr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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