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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고전 안팎 종횡무진 즐기라

등록 2009-06-07 16:53수정 2009-06-07 16:53

임성미의 창의적 읽기
임성미의 창의적 읽기




임성미의 창의적 읽기 /

32. 과학책 읽기
33. 고전도 맛있게 읽는 법이 있다
34. 내적 성장을 위한 책 읽기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될 책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 <왕자와 거지>를 쓴 마크 트웨인(1835~1910)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문학, 철학, 음악 분야의 여러 고전을 읽고 매우 깊은 교양으로 연마된 나치 독일의 장교들이 무자비하게 유대인을 학살했으며, 학살을 하는 중에도 고전을 즐겼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들에게 고전 읽기는 일종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듯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었으리라.


흔히 사람들은 고전이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위대한 책이요, 문화의 원형이고 지혜의 창고이므로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고전을 즐겨 읽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고전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지레 고전에 주눅이 들어 펴보지도 못했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읽을 만큼 재미난 고전 작품을 만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고전을 어떻게 맛있게 읽는지 그 방법을 몰라서일 것이다.

고전이 위대한 책이라고 해서 무슨 종교 경전 읽듯이 숭배하는 자세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고전의 그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는지 찾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눈을 부릅뜨고 읽어야 한다. 고전 읽기의 묘미는 파헤치고, 실마리를 잡아, 정체를 밝혀가는 즐거움에 있다. 그것은 마치 피시게임에서 높은 레벨을 차지하기까지 숱한 장애를 거치는 과정과도 같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미로를 꾸불꾸불 헤쳐 나가다 보면 마침내 시원스레 통하는 길을 만나게 되고 곳곳에 숨어 있는 의미들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토끼전>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이야기는 이본이 120여 개나 되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그러니 당연히 판소리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이 소설이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까닭을 알려면 그 당시 역사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 초등용으로 나온 책이야 읽기 쉽게 내용을 요약하여 매끄럽게 편집해 놓았지만, 중학생부터는 원작의 맛을 살리기 위해 옛말이나 한자성어, 속담, 사투리, 비속어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나면 먼저 소리 내어 구연하듯 읽어본 후 앞뒤 문맥을 살피면서 뜻을 헤아리고, 그래도 모르겠다면 사전을 찾아가며 뜻을 익혀가는 게 좋다. 이렇게 한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족집게로 털을 뽑듯이 읽기가 수월해진다.

이제부터 할 일은 ‘숨은그림찾기’이다. 배경과 인물들의 행동에 담겨 있는 숨은 뜻을 추적해 보아야 한다. 병든 용왕이 다스리는 수국은 기울어가는 조선 왕조를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용왕은 토끼의 꾀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무능한 왕이다. 부귀영화와 벼슬을 준다는 말에 속아 자라를 따라가는 토끼는 신분상승에 눈이 멀고 허영에 빠진 서민의 욕구를 보여준다. 그런 토끼가 용왕이라는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위기를 겪어내고 오히려 용왕을 제압하면서 대변신을 하게 된다. 더 이상 나약한 토끼가 아니다. 시대 상황과 작품을 연결 지어 본다면, 토끼의 변화는 곧 민중의식의 상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끼전>을 더 맛있게 읽으려면 인물과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다. 토끼에게 갑자기 닥친 일과 힘들었던 점, 위기와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 등을 상상 대화를 통해 나눈다면 토끼의 삶이 곧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 고전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상상하기이다. “용왕은 왜 병이 들었을까?” “토끼가 용궁에 머물면서 생긴 재미있는 사건들은 무엇일까?” “용궁에서 쫓겨난 자라에게는 무슨 일들이 생겼을까?” 등을 상상하면서 고전의 여백을 채워 보는 것이다.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의 것이듯, 고전도 결국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의 것이 되어 그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임성미 <책벌레 선생님의 아주 특별한 도서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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