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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의대에 들어가 물리학자가 되려는 아이

등록 2009-08-02 15:41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지난주에 청소년리더십캠프에 다녀왔는데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다룬 뒤라 그런지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11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부터 못하는 학생까지, 모범생으로 보이는 학생부터 그렇지 않은 학생까지, 바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중에 몇몇 학생의 사례를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가장 나를 가슴 아프게 한 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태도도 모범적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캠프에도 남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참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경쟁자들은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캠프에 참가하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의 의과대학에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필자가 꿈이 무엇인가 묻자 의외의 대답을 했다. “물리학자.” 의과대학은 엄마의 꿈이고 자신의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를 설득할 수가 없어 그냥 들어주기로 했단다. 어차피 그 대학에 들어갈 실력이면 물리학과로 전과하는 데 어렵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성적이 꽤 좋은 중3 학생인데 정말 공부하기가 싫다는 학생도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체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학원에서 10시 넘어서 끝나면 독서실에 새벽 1~2시까지 있는데 공부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잠을 자거나 피시방에 간단다. 당연히 학교에 가면 대부분 자다가 온다고 했다.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중3 여학생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부모를 설득할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미술 관련 학과가 아니면 절대로 공부하고 싶지 않고 실제로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 온 바가 있어 아직 성적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부모는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엄마에게 얘기를 하니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단다. 문제는 아빠의 허락을 받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웃을 때 보니 밝은 얼굴인데도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지막 학생은 고1 학생인데 중학교 때 공부를 못했단다. 자신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부모의 뜻이 워낙 강해 인문계로 진학했고 지금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고 했다. 들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부모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학생의 인식이었다.

참가자 중에는 물론 부모가 알고 있는 대로 생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부모의 뜻과 자기의 뜻이 맞지 않아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부모를 설득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제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다. 부모가 원하는 겉모습만 입는 것 말이다.

이 집단에서 절반 이상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학생의 절반 이상이 그러리라고 유추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아이들은 많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에게 내 생각을 설득하려 들면 아이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없고 대화는 점점 없어질 수밖에 없다. 평소에 자녀를 충분히 이해하려는 자세가 있을 때 아이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남관희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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