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6. 군주론과 신군주론, 정치적 인간의 생존법?
17. 민주주의는 경제 '프렌들리'한 제도일까?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는다면
18. 행복한 밥상. 먹거리에 담긴 인문정신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키몬과 페리클레스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키몬은 돈이 많았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주머니를 활짝 열곤 했다. 공짜 저녁을 마련하고 자신의 밭에서 나는 작물을 아무나 거두어 가게 하는 등등으로 말이다. 반면, 페리클레스에게는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재력으로 승부를 내려 했다간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 페리클레스는 허를 찌르는 승부수를 던진다. “시민들의 재산으로 시민들에게 베풀기.” 당시 아테네에서는 제비뽑기로 임명하는 관직이 많았다. 게다가 시민들이 재판정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페리클레스는 거둔 세금으로 수당을 챙겨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키몬은 ‘부자가 시민들을 돈으로 매수한 꼴’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다. 키몬이 더 큰 선물을 내놓을수록, 사람들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키몬의 힘이 더욱 세져서 그에게 기대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아지면 어쩔 것인가. 그의 말을 거절하기는 더욱 어려울 테다. 반면, ‘공직 수당’을 받은 사람들은 페리클레스에게 별다른 고마움을 전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챙겼다고 여겼을 따름이다. 그러곤 받은 돈으로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구했다. 옛 아테네 한복판에는 아고라(agora)가 있다. 아고라란 시장이라는 뜻이다.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으로 꼽힌다. 그런데 시장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저기서 물자를 구해 와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면 커다란 권력을 지닌 사람이 나서야 한다. 독재국가에서 시장이 제 역할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반면,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면 독재가 자리 잡지 못한다. 돈만 주면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데 뭐하러 권력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겠는가. 이처럼 민주주의는 ‘경제 프렌들리(friendly)’한 제도이다. 시장이 자리 잡은 곳에는 민주주의도 뿌리내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통하는 곳에서는 시장이 살아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주장에 ‘딴지’를 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장이 되레 독재를 부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모든 일에는 목적과 수단이 나누어지는 법이다. 목적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무리가 없다. 예컨대, “나는 너무 건강해서 걱정이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마취는 수술에 꼭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 심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 수단은 목적에 맞추어 적당하게 수준을 맞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돈은 어떨까? 돈 버는 일이 목적이 되었을 때 삶은 괴상해져 버린다. “이익이 너무 많아서 큰일입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목적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목적은 탈을 낳기 마련, 돈 많은 집안치고 큰 다툼 없는 경우가 드물다. 재벌가일수록 재산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지 않던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말한다. 돈은 이를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너무도 지당한 소리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돈을 움켜쥐려고 죽자 사자 매달릴까? 무엇보다 살길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다. 따라서 생존을 가져다주는 물건에 대한 욕망도 무한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다스릴 때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의 말은 중산층이 많아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논리와도 통한다. 나아가,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고 빈부격차가 적은 나라들은 대개 ‘국격’(國格)도 높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먹고살 만한데도 돈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돈 자체가 곧 삶의 목적처럼 되어버린 경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은 어느 순간부터 절대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나라의 목표’처럼 되어버렸다. 과연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까? GNP가 높은 나라에서 우울증 환자가 많고 자살률이 높은 까닭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 국력을 키우자는 데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얼마만큼의 돈만 있으면 될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행복한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그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경제가 더 자라나면,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더 행복해지리라 막연히 믿고 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런 우리들의 믿음을 수단이 목적을 삼켜버린 본보기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장사꾼의 신이다. 동시에 도둑의 신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데는 시장이 큰 몫을 한다. 정(情)은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쌓인다. 신뢰도 반복되는 거래 속에서 싹튼다. 사회는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굴러간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말한 이유다. 그러나 사람은 희미해지고 돈이 뚜렷해진 시장은 위험하다. 이럴 때 헤르메스는 도둑이 되어버린다. 상대방은 나의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꾸려갈 때 사회는 독재로 흐르기 쉽다. 키몬 같은 이가 돈다발을 흔들어댈 때 자유나 평등 따위는 가차 없이 내팽개쳐버릴 테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살라고 말한다. ‘중용’을 지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정신을 지킬 만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경제력’은 어느 정도일까? 건강한 시장을 꾸려나가게 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가 제대로 서려면 경제성장률 수치를 따지기에 앞서 이 물음부터 보듬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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