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4. 가족과 국가의 경쟁, 누가 살아남을까?
15. 의상철학, 옷이 사상보다 중요한 이유
16. 군주론과 신군주론, 정치적 인간의 생존법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여인들은 T.P.O.에 따라 옷을 입었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옷차림을 맞추어야 했다는 뜻이다. 아침 7시에 몸단장을 시작으로 아침에는 가운을, 점심에는 산책용 옷을, 오후에는 애프터눈 드레스를 입었다. 저녁에 나들이를 할 때는 이브닝드레스가 따로 있었다. 하루에도 여성들은 예닐곱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드레스 코드’는 중요하다. 회사에 운동복 차림으로 가기는 난감할 테다. 운동장에서 넥타이를 맨 채 공을 차기도 어색하다. 영국의 작가 토머스 칼라일에 따르면 인간 세상은 옷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왕과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 마술사가 나타나 옷을 전부 없애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위엄과 체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옷에는 한 사람의 지위와 성격을 보여주는 신호들로 가득하다. “모든 가치는 호크와 단추 안에 담기며 복장으로 유지된다.” 칼라일의 말이다. 심지어 ‘패션 리더’들은 옷으로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패션 큐레이터인 김홍기는 프랑스 궁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루이 14세는 화려한 차림새로 유명했다. 왕의 입성은 귀족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나아가 루이 14세는 패션으로 다른 나라의 귀족들마저도 길들였다. 베르사유궁의 디자이너들은 인형에 유행하는 옷을 입혀서 세상 곳곳에 보냈다. 프랑스 궁전의 옷차림이 바뀌면 유행은 금세 달라졌다.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럴수록 프랑스의 직물과 패션 상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옷을 잘못 입어 권력을 놓친 경우다. 궁정의 답답함이 싫었던 젊은 왕비는 시골 아낙네들이 입던 하늘하늘한 모슬린 드레스를 좋아했다. 패션리더 격이었던 프랑스 왕비의 차림새가 바뀌자, 유럽의 궁정은 얇은 천으로 된 흰색 원피스로 가득 찼다. 이는 프랑스의 경제를 흔들어놓았다. 나라 살림살이를 떠받치던 직물과 레이스가 팔리지 않았던 탓이다. 이 무렵부터 기업가들은 왕비를 대놓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패션은 신분을 나타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평민들은 하이힐을 신지 못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장사치들 사이에서도 옷차림에 제한이 있었다. 연 수입 5만 길더 이상의 상인들만 입는 옷 등등, 버는 수준에 따라 복장 단속이 철저했다. 그런데도 화가 렘브란트는 대사업가들만 입는 옷을 걸친 자신의 모습을 버젓이 그렸다. 패션으로 평등을 부르짖은 셈이었다. 유행은 민주주의를 퍼뜨리는 수단이 되곤 한다. 새로운 패션은 눈에 거슬리기 쉽다. 그래서 도발적인 옷은 고급 창부들에게서부터 번져 나갔다. 그네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할 테다. 어차피 눈 밖에 난 사람들이기에 잃을 게 없겠다. 처음에는 눈살 찌푸리던 사람들도 그네들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따라하다 보면, 어느덧 무시당한 이들의 옷차림은 사회의 주된 흐름이 되곤 했다. 줄무늬인 스트라이프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가며 세상에 퍼졌다. 수백년 전 사람들은 스트라이프를 ‘악마의 무늬’라 불렀다. 감옥에 갇힌 사람, 문둥이, 어릿광대 등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만 스트라이프가 그려진 옷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트라이프는 젊음과 활기를 나타내는 디자인으로 여겨진다. 유행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좇는다. 그 가운데서 관심 받지 못했던 이들의 특징이 ‘참신함’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너무 낯선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법이다. 패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입고 있는 복장 곳곳에는 패션의 오랜 역사가 스며 있다. 남성들이 입는 정장만 해도 그렇다. 정장 재킷의 깃에는 단춧구멍이 나 있다. 학생이나 회사원들은 보통 이곳에 배지를 달곤 한다. 원래 이 구멍은 군복인 튜닉의 깃에 있던 것이란다. 또한 재킷의 옆구리 부분은 트여서 벌어져 있다. 이 또한 군복의 흔적이다. 말을 탈 때 편하려고 옷 옆이 벌어지게 했던 것이다. 정장만 입으면 행동이 굳어지는 이유는 조상 격인 군복의 영향도 있다고 하겠다. 여성복에도 여전히 코르셋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대인들은 여전히 44사이즈에 집착하지 않던가. 패션은 사람들을 정해진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망나니들이라도 제복을 입으면 움직임이 조신해진다. 반면, 멀쩡한 사람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금세 껄렁해지곤 한다. 복장이 사람들을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원시인들도 단지 추위를 막기 위해서만 옷을 입지 않았다. 맨몸에도 무늬를 그리고 문신을 하지 않던가. 칼라일에 따르면, “정신은 꾸미고 싶은 욕심에서부터 자라난다.” 어떤 옷차림새를 좋아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옷과 함께 개성이 자라난다는 뜻이다. 반면, 칼라일은 “옷은 이제 사람들을 옷걸이로 만들려고 위협하고 있다”며 불평한다. 유행에 묻어가면 남의 눈에 띌 일도 적다. 이럴 때 패션은 내가 누구인지를 감추는 데 쓰인다. 패션 산업은 날로 커나가고 있다. 패션은 사람들의 개성을 틔우기도, 잠재우기도 한다. 깨인 정신으로 내 옷매무새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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