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아이들이 머리가 굵어지면 영 대화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말을 좀 붙이려 해도 아이들은 단답형 대답에 그친다. 네, 아니오, 싫어요, 그렇죠 뭐, 모르겠는데요, 알았어요…. 이런 반응이 계속되면, 부모도 의욕이 떨어진다. 한 강사가 청소년들에게 왜 그런지를 물었단다. 대답인즉, 부모님들이 “맞는 말만” 하는데, 그걸 “기분 나쁘게(!)” 하기 때문이라나? 하하하. 정말 웃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다. 부모들은 늘 정말 옳은 말,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만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이들에게는 뻔한 말, 늘 듣던 말, 어른들의 의도대로 자기들을 조정하려는 말, 심지어 지적하고 혼내는 잔소리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들과 대화를 잘 하려면, 부모가 판단자(judger)가 되지 말고, 학습자(learner)가 되어야 한다. 판단자는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해보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동적으로 판단한다. 자신의 틀에 맞춰 판단하고, 짐작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든다. 반면, 학습자는 호기심이 먼저다. 자신의 판단은 뒤로하고 상대방의 관점을 알아보려 한다. 일단 받아들인 다음 질문한다. 마치 연구자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보려 한다. 아이들이 왜 부모들이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한다’고 했을까? 부모들이 자기도 모르게, ‘너는 부족해, 문제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가르치려 들면서 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대 자녀가 연락 없이 밤늦게 들어왔다고 하자. 판단자형 부모는 십중팔구 이렇게 나올 것이다. “너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부모는 안중에도 없냐?” “공부에 올인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도대체 어디서 누구랑, 뭘 했기에, 이 시간에 들어오냐?” 학습자형 부모는 이렇게 시작한다. “많이 늦었구나. 연락이 없어서 정말 걱정했다.” 그런 다음에 물어본다. “저녁에 뭘 했는지 이야기 듣고 싶은데… 지금 할래 아니면 자고 내일 아침에 얘기할래?”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화를 내면 실익은 없고 관계만 냉각된다. 그렇다고 학습자형 부모가 방임하는 건 아니다. 효과적인 방법을 써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피드백도 더 잘 해주자는 것이다. 기억하자. “설득을 포기할 때 우리의 설득력이 가장 높아진다.” (조지프 그레니, <결정적 순간의 대화>) 질문의 질도 중요하다. “직업이 뭐죠?”라고 물으면 단답형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상대는 더 확장된 답변, 즉 그 주제와 관련한 자기 생각을 폭넓게 말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학습자의 태도로 아이들이 보내오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잘 관찰해보자. 그리고 질문을 잘 해보자. 자신에게 필요한 해답은 사실은 자기가 갖고 있는 법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안 되는지, 어떤 점을 바꿔야 할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좋은 코칭을 하는 것도 결국은 학습자 관점에서 출발한다. 고현숙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helenko@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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