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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난은 나라도 어쩌지 못한다?

등록 2010-01-31 15:43수정 2010-01-31 15:56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9. 다윈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면
20. 100년 뒤에 사람들은 무엇으로 돈을 벌까? - 소유의 사회학
21. 천재의 조건 - 노력일까, 재능일까?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지음, 김윤상·박창수 풀어씀, 살림.
〈소유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다. 허둥지둥 떠나는 상황, 여행 준비가 제대로 되었을 리 없었다. 사람들은 금세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자 신은 하늘에서 먹거리인 만나를 내린다. 양도 충분해서 모든 이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버린다. 만약 만나가 떨어지던 사막이 개인 땅이었으면 어땠을까? 어떤 사람이 100평방마일을 갖고 있고 대부분은 땅 한 조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신이 만나를 내려주어 봤자 아무 소용 없다. 개인 땅 100평방마일에 떨어진 만나는 엄연히 ‘개인 소유’이기 때문이다. 거기 떨어진 만나에 주인 허락 없이 손을 댔다간 도둑으로 몰릴 터다. 땅주인은 자기 땅에 떨어진 만나를 주워 모아 배고픈 이들에게 팔고, 헐벗은 사람들은 가진 것을 탈탈 털어 먹을거리를 산다. 그러다가 결국 사람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는 지경까지 몰리고 만다.

그렇다면 주인은 어떨까? 사람들이 가난해질수록 만나도 팔리지 않는다. 주인은 만나가 ‘과잉생산’되었다며 한숨을 쉰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배를 곯고, 반대쪽에서는 엄청난 만나가 쌓인 채 썩어가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헨리 조지가 평생 고민했던 문제는 한 가지였다. 경제는 언제나 커나가고 산업도 발전해간다. 그럼에도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을까? 나라가 부자여도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헨리 조지가 찾은 답은 간단하다.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건물 주인이 집세를 올려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벌이가 좋아지면 일터와 집이 들어선 땅의 주인들은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던가.

땅을 개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한, 사회가 잘살게 되어도 사람들 대부분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사막의 땅이 개인 것이라면 신이 만나를 떨어뜨려도 대다수는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게다가 땅이 없는 사람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어보자. 무인도에서 그는 프라이데이라는 흑인 소년을 만났다. 바다에 갇혀 있는데다가 섬 자체를 이미 로빈슨 크루소가 차지한 상황, 프라이데이는 로빈슨 크루소의 것을 건드리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가 섬을 갖고 있다면 프라이데이도 그의 것이다. 땅 없는 사람들의 처지는 프라이데이와 별다를 바 없다.

〈진보와 빈곤〉, 〈소유의 종말〉
〈진보와 빈곤〉, 〈소유의 종말〉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헨리 조지는 땅에서 얻는 모든 이익을 세금으로 거두어야 한다고 외친다. 다른 세금은 모두 없애 버려도 된다. 땅에서 거두는 수입은 모든 이들이 살아가기에 충분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단일세(single tax) 제도’라고 알려진 주장이다.

단일세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개발이익 환수제’, ‘토지공개념’ 등 우리나라 세금 제도에도 헨리 조지의 생각은 많이 녹아들어 있다. 땀 흘려 번 돈에 대해 세금을 많이 매기면 사람들의 얼굴은 벌게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엄청난 수입을 거둔 이들에게 들이미는 세금 고지서에는 박수를 보낸다. 정의롭지 않게 번 돈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땅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은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땅에서 수입을 얻으려는 모습은 다른 분야에까지 퍼져 나가는 모양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접속’(access)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예컨대, 운동화 회사인 ‘나이키’의 본사는 신발을 만들지도, 물건을 직접 팔지도 않는다. 신발은 일손을 싸게 구하는 동남아나 중국의 공장에서 만든다. 판매는 계약을 맺은 대리점들이 한다. 나이키가 실제로 파는 것은 ‘나이키’ 상표뿐이다. 신발을 시장에 내놓은 사람들은 이 상표에 ‘접속’하여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도 이 상표에 ‘접속’하고 싶어 물건을 산다.

이 점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좀더 분명하다. 돈 주고 샀다 해도 소프트웨어를 마음대로 고쳐서 되팔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저작권 문제에 부닥칠 테다. 우리는 돈 주고도 소프트웨어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만을 얻는 셈이다. 빌리는 대상만 땅에서 상표와 소프트웨어로 바뀌었을 뿐, 주인에게 땅을 빌려 쓰는 모습과 별다를 게 없다.

캘리포니아 증기 여객선의 특실 손님들은 점잖았다. 하지만 보통실 승객들은 그렇지 못했다. 특실이나 보통실이나 식당의 음식은 넉넉하게 나왔다. 그럼에도 보통실에서는 항상 음식이 부족했다. 왜 그랬을까?

특실 승객이 보통실 사람들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특실의 식당에는 손님마다 좌석이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남과 자리를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반면, 보통실 식당은 늦게 가면 자리 맡기가 어려웠다. 붐비는 식당 모습은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혹시 식사를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다. 조바심에 사람들은 좀더 많은 음식을 그릇에 담게 된다. 불안이 탐욕을 부르는 셈이다.

헨리 조지는 탐욕이 불안에서 온다고 말한다. 모두가 써도 될 만큼 넉넉한 처지에서는 내 것부터 손에 쥐려는 조급함도 사라진다. 반면, 모두가 내 것부터 챙기려는 분위기에서는 쓰고도 남을 만큼 쌓인 물자도 늘 부족하기만 하다.

경제를 살리자는 외침으로 어수선한 요즘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경제가 살아나도 뾰족한 수는 없다. 가난은 나라도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부자가 많아지는 만큼 사람들 마음속의 가난은 더욱더 커질 뿐이다. 100년 전의 책인 <진보와 빈곤>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더더욱 걱정스러워지는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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