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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웃기는 괴물’ 도깨비만의 매력

등록 2010-07-04 16:15수정 2010-07-04 16:25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초등 고학년~중1]

40. 축구하는 호모 루덴스, 왜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할까?
41. 프랑켄슈타인과 한국 도깨비, 우리 안의 괴물 찾기
42. 전쟁의 매력 - ‘전쟁문화’를 생각하다.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지음, 이인규 옮김 /푸른숲 주니어

〈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김열규 지음 /사계절

〈프랑켄슈타인〉, 〈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프랑켄슈타인〉, 〈도깨비 본색, 뿔 난 한국인〉.

프랑켄슈타인은 원래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었다. 여러 시체를 토막토막 얽어서 만들어진 기괴한 모습이지만 성격은 더없이 좋았다.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이다. 도토리와 과일, 나무뿌리를 주로 먹는단다.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산속에 조용히 숨어 지낸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몰래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게다가 프랑켄슈타인은 교양까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으로 말을 익혔다. 문자는 숲 속에서 주운 책으로 ‘독학’하여 익혔다. 밀턴의 <실낙원>,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가 즐겨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그의 겉모습이 문제였다. 원래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는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오히려 진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다. 그는 착하디착한 괴물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이 깨어나자마자 질겁하고 내쳐 버린다. 너무 징그럽게 생겼기 때문이었다니, 기도 안 차는 이유다. 괴물의 마음은 아비에게 매달리는 아이와 같았다. 귀찮게 달려드는 괴물을 피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도망을 친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쫓아가다가 박사의 어린 동생을 우연히 죽이고 만다. 조용히 하라며 입을 막는다는 것이, 너무 힘이 세서 숨을 아예 끊어버린 것이다. 증오를 품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복수의 칼을 간다.

괴물은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친다. 그가 가려는 곳은 북극이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기를 쫓아오도록 끊임없이 집적댄다. 왜 그랬을까? ‘어느 호기심 많고 신앙 없는 자가 자기와 같은 괴물을 또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단다. ‘괴물 제조 전문가’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자신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별스런 존재에 굳이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을 테다.

이쯤되면 ‘프랑켄슈타인’으로 알려진 괴물은 꽤 괜찮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1818년, 여성작가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모습으로는 그렇다.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100여년 동안 무려 130편이 넘는 영화와 소설로 거듭나면서 점점 흉측하고 잔인한 괴물로 거듭났다.

하긴, 다른 많은 괴물들도 끊임없이 ‘악마화’ 과정을 겪곤 한다. 인기를 끌수록 점점 못되고 흉악한 범죄자로 바뀌어간다는 뜻이다. 드라큘라도 그랬다. 드라큘라는 원래 루마니아의 귀족이었다. 그는 유럽으로 나아가려는 이슬람 세력을 막아낸 장군이기도 했다. 드라큘라는 포로를 아주 잔인하게 다루기로 유명했다. 드라큘라의 잔인함에 대한 끝없는 소문은 결국 그를 ‘피를 빨아먹는 악마’로 바꾸어 버렸다.

왜 괴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흉측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까? 괴물은 확실한 ‘문화 상품’이다.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은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숱한 수입을 안겨주었다. 관광수입에서 연극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괴물의 ‘상품가치’는 무척 크다. 게다가 괴물은 강하고 짜릿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는 법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겉모습만 끔찍할 뿐인 ‘착하고 여린 교양인’이었어도 지금처럼 인기를 누릴까? 죠스가 덩치만 큰 상어라면 영화 <죠스>가 과연 재미있을까? 괴물은 괴물답게 무섭고 사정없이 모질 때 매력적인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괴물은 무엇일까? 나라를 대표하는 괴물들에게는 시민들의 성품도 묻어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갸웃거려도 그럴싸한 괴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문화에서는 피를 철철 흘리며 다투는 괴물들 이야기가 거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괴롭히는 것들도 별로 없다.

민속학자 김열규 교수는 우리 문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괴물로 도깨비를 꼽는다. 그에 따르면 도깨비는 여러모로 한국인을 닮았다. 춤과 노래는 도깨비의 으뜸가는 즐거움이다. 도깨비는 짓궂은 장난을 즐기지만 잔인하지는 않다. 도깨비는 능력자이기도 하다. 도깨비방망이만 있으면 금과 쌀,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그럼에도 도깨비는 농지거리를 즐길 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프랑스의 인문학자 로제 카유아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크게 넷으로 나눈다. 첫째는, ‘아곤’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권투 같은 격투기가 여기 들어가겠다. 둘째는 ‘미미크리’이다. 소꿉장난처럼 흉내내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종류다. 셋째로는 ‘알레아’가 있다. 주사위놀음처럼 확률과 행운을 가슴 졸이며 기대하는 놀이다. 마지막은 ‘일링크스’이다. 뭔가에 빠져들어 황홀한 기분을 즐기는 부류로, 춤과 노래, 술 마시기 등이 여기에 들겠다.

아마도 한국인은 ‘일링크스’에 가장 끌리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는 스포츠를 몰라도 신나는 응원에 ‘취해서’ 경기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우리네 소문난 잔치에서 춤과 노래가 빠지는 경우도 별로 없다. 반면, 투우처럼 피를 철철 흘리는 ‘아곤’ 부류의 놀이에 끌리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싶다.

이 점은 도깨비들도 마찬가지다. 숱하게 전해지는 도깨비 이야기에서도, 전쟁이나 피비린내 나는 다툼을 담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도깨비는 아무한테나 씨름하자며 달려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질 뿐이다. 여러모로 도깨비는 한국인의 모습을 닮았다.

괴물들도 점점 세계화하는 요즘이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는 더 이상 유럽에서만 익숙한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매력적인 문화와 함께 전세계로 뻗어나간다. 도깨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괴물 캐릭터’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해학을 즐기는 괴물이 어디 흔하던가. 세계화될수록 개성과 독특함은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도깨비에 담긴 우리만의 매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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