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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러브레터’를 습관처럼

등록 2010-11-08 09:18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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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8
[난이도 수준-중2~고1]

어떤 여자가 자꾸만 사랑을 고백해서 귀찮아 죽겠다.

한두 번이 아니다. 휴대폰이 울리고 낯선 번호가 뜬다. 잠시 망설이다 받는다. 정체불명의 아가씨가 다짜고짜 외친다. “사랑합니다.” 남자로서가 아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나도 다짜고짜 끊는다. 통신회사들의 가입권유 음성메시지다.

휴대폰을 닫고 잠시 그 말을 입속에서 가만히 굴려본다. 사..랑..합..니..다. 음성메시지가 아닌 진짜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일이 평소에 있는가?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에 빗대자면 “사랑은 먹고 다니냐?”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사랑은 주고 다니냐?” 자식 키우는 입장에선 좀 그렇다. 그 밖의 대상에겐 내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한 적이 없다. 삭막한 삶이다. 잡지와 신문을 만들며 숱한 글을 썼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는 글을 쓴 일은 기억에 없다.

오늘의 주제는 ‘러브레터’다. 나는 못했지만, 아이들에겐 일종의 습관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마침 할머니 생일이 다가왔다. 할머니에게 사랑과 존경을 듬뿍 담은 글을 쓰게 했다. 글쓰기의 기술을 말할 계제는 아니다. 두 가지만 지키라고 했다. 할머니와의 지난 추억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 사랑을 최대한 표현할 것.

“할머니를 생각하고 어린 시절 앨범을 보니깐 자꾸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져요.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잖아요.(중략) 생신 때까지 (은서와) 서로 싸우면 할머니의 기분과 생신을 맞은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만이라도 할머니께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그럼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내일 봬요. 사랑해요! 2010년 10월8일 시험이 끝난 준석이가 할머니께.”

“아,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나네요. 할머니와 함께 계곡에 간 적도 있고,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아, 그리고 영화를 볼 때는 저희에게 양보를 해주셨잖아요. 할머니 수준 영화도 아닌데, 저희 때문에 억지로 그 영화를 보셨죠. (중략) 할머니, 1000살 넘게 오~래 오~래도록 사고 없이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2010년 10월10일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손녀인 은서 올림)


빛나는 알맹이는 없다. 맹탕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로 하여금 답장까지 쓰게 했다. 이유가 필요 없다. ‘러브레터’는 받는 이를 무조건 기분 좋게 한다. 존재감도 확인시켜준다. 이럴 때 글은 꽃보다 아름답다.

‘아침에 찢던 편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밤새 누군가를 생각하며 힘겹게 만들던 문장들. 아침에 다시 보면 왜 그리 얼굴이 화끈거렸을까. 찢고 또 쓰고, 또 찢고 또또 쓰던 그 ‘러브레터’의 추억을 일상적으로 되살리자고 하면 비현실적 주장이리라. 최소한 ‘껀수’가 있을 때만이라도 실천해보자. 생일 또는 의미 있는 기타 기념일에 ‘무덤덤’과 ‘쑥스러움’을 타파하고 ‘애정표현문’을 전달하자. ‘러브레터’가 거창하다면 ‘러브쪽지’라도.

글은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성질을 닮았다. 한번 마음에 꽂히면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기록을 남기자.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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