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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심심해서 심심한 유감이야

등록 2010-12-06 09:23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2
[난이도 수준-중2~고1]

“불굴의 백수처럼 써라.”

인상적인 글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그냥 ‘백수’가 아니다. ‘불굴의 백수’다.

잠시 백수로 지낸 경험에서 체득한 교훈이다. 그때 나의 장난스런 좌우명은 이러했다. “심심하면 지는 거야.”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티를 역력하게 내거나 ‘무슨 건수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꼴은 저렴한 인간으로 추락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전화로 불러주기만 하면 언제든 즉각 ‘5분대기조’처럼 ‘출동’할 듯한 자세는 백수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철학이었다. 나는 놀면서도 바쁜 척했다. 이런 ‘불굴의 백수정신’과 글의 운명은 닮았다. 정말, 심심하면 진다.

학창시절의 선생님들을 떠올려본다. ‘지루한 수업’에 강했던 분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면을 유도했다. ‘유쾌한 수업’에 강했던 분들의 얼굴도 함께 지나간다. 점심시간 직후라도 눈꺼풀이 내려앉기는커녕 똘망똘망해졌다. 어떻게 졸리지 않도록 지루함을 타파할까.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처음이 심심하면 지는 거다. 첫 문장도 중요하지만, 첫 단락도 마찬가지다. 앞 대목을 흔히 ‘리드’라 부른다. ‘리드’는 말 그대로 글 전체를 ‘리드’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승부처다. 첫대목에서 ‘뭔가 있다’는 인상을 결정적으로 주지 않으면 독자의 시선은 곧장 이탈한다. 더더욱 ‘단문’이 필요한 이유다. 사람들은 롱테이크를 잘 참아내지 못한다. 글의 앞부분일수록 빠른 리듬으로 문장을 전환해야 한다. 쇼트컷! 처음이 활기차야 전체가 활기차다.

둘째, 구구절절하면 지는 거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혹은 우리집 강아지조차 귀띔으로 알고 있을 당연한 말들은 절대 장황하게 나열하지 말자. 이거야말로 ‘심심 올림픽’의 금메달감이다. “새삼 재론하지 않겠다” “생략하겠다” “여러분도 이미 잘 알듯이” 등으로 툭툭 가지를 치는 편이 낫다. 가령 “요즘 친구들이 얼마나 학원 때문에 등이 휘는지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셋째, 머리 아프면 지는 거다. 다른 말로 하면, 비유가 없으면 지는 거다. 전문적이거나 낯선 이야기일수록 그렇다. 복잡한 논리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능력은 ‘창의력’에 해당한다. 그 창의력의 무기 중 하나가 비유다. 어려운 고담준론을 생활 속의 가볍고 사소한 에피소드처럼 끌어오자. 연평도 포격사건을 ‘또라이 친구’에 빗대듯이.

이런 관점에서 준석과 은서의 글을 읽는다. “이건 내가 유치원 때 겪은 일인데, 그때는 참으로 신기했다. 유치원을 다니던 12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니 어쨌든 크리스마스에 나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았다. 내가 받기 전, 어떤 아이는 장난감을 좋아하는데….”(은서) “한창 신원당 아파트에 살 때였다. 엄마는 유딩들이나 믿을 괴담을 해주시곤 하였다. ‘지하로 내려가면 망태 할아범이 잡아간다!’”(준석)

산타할아버지의 진실을 폭로하는 글의 첫대목이다. 따분하기 그지없다. 은서가 특히 그렇다. 뭐, 구미 당기는 정도가 0%다. 그래서 어쩌라고! ‘언제, 어디서’에 관해 뭐 그리 길게 늘어놓는가. 준석도 맘에 안 든다. “한창 신원당 아파트에 살 때였다”라며 역시 시공간 설명으로 시작한다. 쓸데없이 머뭇머뭇 어슬렁거릴 이유 없다. 핵심을 내포할 만한 엉뚱한 키워드를 들이대거나, 최소한 냄새라도 피워야 한다. 딴청 피우는 척하면서, 확 치고나가는 거다.(참 말은 쉽죠~잉)

심심한 글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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