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9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9
[난이도 수준-중2~고1]
빙글빙글 카메라가 돌아간다. 입술 죽인다. 클로즈업, 더더 클로즈업.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손에 밀착. 카메라 뒤로 뺐다가, 이번엔 발이다. 위로 위로 눈. 동작 좋고. 바로 밑 콧구멍 오케이. 다시 아랫입술 클로즈업~.
진짜 동영상은 아니다. 눈으로 찍고 문장으로 출력하는 그림이다. 대충 스케치하면 다음과 같다. “식당 앞에서부터 초딩 은서는 어깨를 앞뒤로 흔들었다. ‘난 싫어. 국수 싫다고.’ 반강제로 앉았다. 평소보다 입 부위가 돌출한 상태. 아랫입술이 5가량 더 나왔다. 반쯤 감긴 두 눈은 45도 오른쪽 아래 방향만을 주시하고 있다. 한 손으론 턱을 괬다. 시간이 갈수록 아랫입술이 더 삐져나온다. 오른발은 10초 간격으로 식탁 다리를 찬다. 콧구멍은 5초 간격으로 벌렁벌렁. 젓가락을 주자 고개를 젓는다. ‘싫어. 안 먹는단 말이야.’ 이번엔 눈이 15도 위 방향으로 치떠진다.”
뭐 이리 복잡할 필요 있냐고?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줄여도 된다. “은서는 국수가 싫다고 투정 부리며 피자를 먹자고 떼썼다.” 짧은 설명만으로는 허전할 때가 있는 법. 앞에서는 “투정을 부렸다”에 그치지 않고 은서의 머리, 손, 눈, 코, 입, 어깨, 발의 움직임을 전했다. 각 신체기관의 변화가 꼬마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은서가 삐쳤다”는 상황을 더 깊이 받아들인다.
오늘은 ‘묘사’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 흔히들 글쓰기 책에선 “서술하지 말고 묘사하라”고 권한다. 왜 그럴까. ‘실감’ 때문이다. ‘실감’이란 피부에 와 닿는다는 뜻이다.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느낌보다 ‘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다르게 말하면 ‘생동감’이다. 정지된 스틸보다는 움직이는 동영상!
중딩 준석도 처음에는 실감나는 글을 썼다. 글쓰기 홈스쿨을 처음 시작할 땐 묘사가 썩 괜찮았다. 가족여행 다녀온 소감문에서 남이섬 펜션에 있던 개의 미세한 움직임을 그린 게 탁월해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불감’의 글로 변했다. 묘사하지 않고, 서술하고 논(論)하려고만 했다. 뭉뚱그려 설명하려고만 했다. 망하는 글의 지름길이다. 학교 수련회를 다녀온 준석에게, 다시 한번 ‘묘사’를 강조하면서 소감문을 적게 했다.
“(앞 생략)결국 한 놈이 걸렸다. 교관선생님은 역시나, 호되게 혼을 내셨다. ‘야 내가 정직하게 바로바로 내라고 말 했어 안했어!!!’ 아이는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쩌면 그 애는 교관 선생님보다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더 무서웠을 것 같다. 결국 선생님이 ‘여러분, 제가 기회를 주었습니까, 안 주었습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주었습니다.’ ‘소리가 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걸 알고도 약속을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다!’ ‘모두 침을 삼켰다. 과연 어떤 벌을 줄 것인가.’(뒤 생략)”
와이드샷이 아니다. 클로즈업이다. 2박3일 수련회 중 입소 과정에서 벌칙 받는 순간에 90% 이상을 할애했다. ‘묘사’는 글의 질서를 바꾼다. 2박3일을 다녀왔다고, 전체의 시간을 공평하게 보여준다면 오히려 산만하다. 단 1분에 불과하더라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집중묘사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인물이나 심리에 관한 묘사도 그렇다. 유명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있어 보이는’ 말을 남겼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이거다. “들이대라, 가까이 들이대라.” 들이대서 묘사해야 성공한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와이드샷이 아니다. 클로즈업이다. 2박3일 수련회 중 입소 과정에서 벌칙 받는 순간에 90% 이상을 할애했다. ‘묘사’는 글의 질서를 바꾼다. 2박3일을 다녀왔다고, 전체의 시간을 공평하게 보여준다면 오히려 산만하다. 단 1분에 불과하더라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집중묘사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인물이나 심리에 관한 묘사도 그렇다. 유명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있어 보이는’ 말을 남겼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이거다. “들이대라, 가까이 들이대라.” 들이대서 묘사해야 성공한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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