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김은식 지음이윤엽 그림/봄나무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중학진로독서
중학진로독서
[난이도 수준-중2~고1]
20. 신념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 윌버포스
21.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
22.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 이 책, 알고 보면 재미있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김은식 지음/이윤엽 그림/봄나무
작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월간 <우리교육>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야구의 추억>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등이 있다. 내용 장기려는 1911년 8월14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해방 후 평양도립병원 원장으로 일했다. 평양의과대학 외과 교수로 일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모와 아내, 자식들을 북에 두고 둘째아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피난지 부산의 제3육군병원에서 일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다 귀국한 전영창이라는 젊은이를 만나 복음병원을 차리게 된다. 미국에서 후원받은 5천달러를 가지고 교회창고에서 시작한 복음병원은 처음엔 치료비를 받지 않았으나, 병원 식구들의 밥값조차 주지 못할 지경이 되자 할 수 없이 ‘감사함’을 만들어 돈이 있는 환자에 한해 자발적으로 돈을 받았다.
휴전 후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 건물이 생겼지만, 전쟁 때와는 달리 지원금이 없어 치료비를 받아야 했는데, 장기려 박사는 치료비가 없는 이에게 자기 월급을 털고, 가불까지 받아 주었고, 가불이 금지되자 뒷문으로 도망치게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의학 연구도 열심히 해 195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제거 수술에 성공해 1961년도 대한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1968년에는 환자들에게 치료비 청구서를 내는 괴로움을 덜려고 의료보험제가 거론됐는데, 이를 시작으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작은 인원이라 적자가 계속됐지만, 부산의 또다른 민간 의료보험과 합치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점점 흑자를 냈다. 1975년에는 청십자조합에 5천명이 가입했다. 그 후 청십자조합은 1985년 전국적으로 지역의료보험이 실시되면서 해산됐다.
1975년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장기려 박사는 부산아동병원을 맡았고, 1979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서 대통령의 배려로 장기려 박사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없다며 매번 거절했다. 심지어 북한 쪽에서 장기려 박사를 초청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다.
1992년에는 드디어 남북한이 공식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로 발표하자 장기려 박사도 신청했다. 그런데 또 다시 남북 간의 신경전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충격으로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고 오른쪽 절반이 마비됐지만, 반신불수 상태에서도 청진기를 놓지 않았다. 마지막이 다가온 것을 느낀 그는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은 하지 말고 화장해 부산 바다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1995년 12월24일 만 84살을 일기로 숨을 거뒀다.
■ 깊이 생각하기 장기려 박사를 사랑한 사람들은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을 도저히 따를 수 없어 그를 모란공원에 모셨다. 그의 비문에는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 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대로 그는 평생 집도 없이 병원 한구석 방에서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고의 외과의사였지만, 떠나는 날 통장에는 달랑 천만원이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선물로 줘 버리고 빈손으로 떠났다. 길을 가다가 걸인을 만나면 주머니를 털어 수표를 건네는가 하면, 영양이 부족해 병이 난 환자에겐 약 처방전 대신 고기 사 먹을 돈을 내주기도 했다. 그가 성자로 존경받은 이유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들과 힘을 모아 ‘부산기독의사회’를 만들어 행려병자들을 치료하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드는 데 적극 동참한 것이 그렇다. 의료보험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의료보험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뱅킹 같은 게 없던 때라 조합 직원들이 일일이 조합원 집을 방문해 돈을 거두러 다녀야 했다. 장기려 박사는 조합의 적자를 자신의 퇴직금으로 메우는 바람에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할 때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장기려 박사는 뛰어난 의술을 베푸는 의사이기 전에 항상 겸손하면서도,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고집쟁이로 비치기도 했다. 복음병원을 운영할 때 의사와 직원을 구분하지 않고 직원들의 식구 머릿수대로 월급을 지급했는가 하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신만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안 된다며 거절했다. 제자들이 자신의 흉상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싫어했다. 그의 뜻을 이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전에 그가 정성을 기울였던 간질환자 치료활동 단체인 ‘장미회’가 국경을 넘어 해외로 활동을 넓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기려 기념 의료선교센터’가 세워져 젊은 의사들이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 진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책 속에 나 있다 ‘의료보험’ 기반 닦고 쓰러져도 청진기 놓지 않아 돈 많이 벌어도 놀고먹으면 안 되는 이유 장기려 박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고 고집했다. 한때 수십명 수백명을 돌보던 그였지만, 이제는 하루 열명도 벅찼다. 환자의 가슴까지 청진기를 들어 올리기가 힘에 겨워 간호사가 한 팔을 부축해 올려야 했고, 처방전의 필체는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누워 흘렀다. 그는 찾아오는 환자들을 다 만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해했다. “젊어서 돈 많이 번 다음에 일 안 하고 편하게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누구나 나중에 편하게 살려고 일하는 거 아닌가요?”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고, 돈을 웬만큼 벌면 일 안 하고 쇼핑이나 여행을 다니며 노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청소년들이 종종 있다. 돈이 많으면 놀고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 장기려 박사는 바보 중의 ‘바보’로 보일 것이다. 맘만 먹으면 의사라는 직업과 명성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했을까.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로 칭송되는 인도의 간디(1869~1948)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일하지 않고 얻는 부, 부도덕한 상거래, 도덕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마음에 울림이 없는 쾌락,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과학, 이기적인 신앙심을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일하지 않고 얻는 부’는 복권과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등으로 대박을 기대하면서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병든다는 것이다. 간디는 불로소득이 우리 자신을 파괴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일은 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는 소속감을 갖게 해 안정감을 준다. 직업을 가져야 세금을 내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직업을 가지는 일차적 의미는 먹고살기 위한 생계유지에 있긴 하지만, 우리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한다. “구두닦이라도 사람이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싶어야 그 직업이 생기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그 사회가 하게 만들어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깨달아야 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회사 회장이었던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가 한 말이다. 돈을 많이 벌어 놀고먹는 것이 일을 하는 이유라면 큰 기업을 이끈 경영인이나 이미 성공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그냥 놀고먹어도 될 텐데 왜 계속 열심히 일을 할까? 그것은 돈이나 생계 수단 외에 일을 하는 다른 동기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취도 보람도 없다. 성취와 보람이 없는 삶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와 같은 삶일 것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일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까.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진로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을 갖는 의미와 필요성, 직업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짚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 나대로 책 읽기 남을 먼저 생각하는 행복 깨닫게 됐어요
대영중 3학년 정진엽
이 책을 읽던 중에 ‘연평도 폭격 사건’이 발생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나라 사정을 보면서 60년 전 6·25 전쟁 때 부모님과 아내, 자식들을 북에 둔 채 둘째아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 내려온 장기려 박사님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보았다. 끝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던 장기려 박사님의 처지에 가슴이 아팠다.
책을 읽는 내내 장기려 박사님의 따뜻한 마음씨와 인간미가 느껴졌다. 뛰어난 실력으로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의사였지만,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없이 한평생 굳은 신앙심으로 하느님이 주신 소명대로 살아오신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전영창 선생과 한상동 목사와 함께 ‘복음병원’을 설립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허름한 교회 창고에, 칸막이조차 없고, 나무토막으로 만든 수술대.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장기려 박사님과 병원 식구들은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무료로 진료를 했다.
복음병원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꾸릴 수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어떤 환자는 걷기조차 못하는 환자를 위해 약을 나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복음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이 되기도 했다. 월급을 줄 때도 의사라고 해서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식구 머릿수대로 받았다. 힘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장기려 박사님의 생각이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태풍 사라호 때문에 많은 피해가 생겼을 때도 장기려 박사님은 부산의 여러 의사들과 힘을 모아 길거리에 버려진 행려병자들을 치료하였다. 여기서 ‘부산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병원균을 이길 수 있는 사랑이라는 면역력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멋진 비유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장기려 박사님은 헤어진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85년에 정부에서 장기려 박사님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에게만 방북을 허용했고 30여명이 북한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왔지만, 장기려 박사님은 자신만 특권을 누릴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다른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자신만 특혜를 누리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시는 장기려 박사님이 존경스럽고, 그 마음을 본받고 싶다.
예전에 ‘돈만 많으면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여름방학 때,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급식봉사를 처음으로 해봤는데 하는 동안에는 힘들었지만 봉사가 다 끝난 후에는 정말 뿌듯했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박사님만큼은 못 하더라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할 것이다.
내 꿈은 방송 프로듀서이다. 프로듀서가 되면 <사랑의 리퀘스트> 같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장기려 박사님은 유능한 의사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한 의사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 탁석산 지음/창비
“직업 선택은 왜 어려울까?”
“그냥 놀고먹으면 안 될까?”
“어떻게 하면 직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세 질문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저자는 직업 선택이 어려운 첫째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직업을 찾으려면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좋은 직업’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흔히 적성검사를 통해 적성을 찾곤 하는데, 검사 결과를 무조건 믿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적성이 일치하더라도 원하는 직업을 실제로 얻는 것도 쉽지 않다는 데 직업 찾기의 어려움이 있다. 자신이 소망하는 것과 적성, 실현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원하는 직업을 얻으려면 현실적인 진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적성을 찾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경험 부족이다. 직접 부딪쳐 보아야 자신이 그 직업에 맞는지,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그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직업 찾기가 힘들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주위 사람들이 주는 정보는 피상적이거나 편협한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 등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직업에 대한 정보도 왜곡되기 일쑤다.
직업 찾기를 힘들게 하는 또다른 이유는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의사, 국가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지만 이런 직업은 경쟁이 치열하다. 직업전문가들은 미래 사회에는 수명이 길어지고 사회 변동이 잦아지면서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직업을 자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직업에서 성공하려면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1등은 한명뿐이며, 이상과 그것을 실현하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희망과 능력 사이에 괴리를 줄이고, 능력과 성취 사이의 괴리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유망한가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이에 앞서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불친절한 변호사보다는 친절한 택시기사가 낫고, 비인간적인 대학교수보다 인간적인 초등학교 교사가 낫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성공했는가 여부는 그 사람의 직업이 말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존경을 받고 있는가가 말해준다. 아무리 사회적 업적이 많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갖추었다고 해도 사회 동료, 가족, 친구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결코 성공적으로 일했다고 할 수 없다. 일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가족에게 긍지를 느끼게 해주며 사회 발전에도 도움을 주고 그 결과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임성미 독서교육전문가,〈오늘 읽은 책이 바로 네 미래다〉저자 /
이승이 한샘글로피아 대표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20. 신념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 윌버포스
21.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
22.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 이 책, 알고 보면 재미있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김은식 지음/이윤엽 그림/봄나무
작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월간 <우리교육>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야구의 추억>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등이 있다. 내용 장기려는 1911년 8월14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해방 후 평양도립병원 원장으로 일했다. 평양의과대학 외과 교수로 일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모와 아내, 자식들을 북에 두고 둘째아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피난지 부산의 제3육군병원에서 일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저자 김은식
■ 깊이 생각하기 장기려 박사를 사랑한 사람들은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을 도저히 따를 수 없어 그를 모란공원에 모셨다. 그의 비문에는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 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대로 그는 평생 집도 없이 병원 한구석 방에서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고의 외과의사였지만, 떠나는 날 통장에는 달랑 천만원이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선물로 줘 버리고 빈손으로 떠났다. 길을 가다가 걸인을 만나면 주머니를 털어 수표를 건네는가 하면, 영양이 부족해 병이 난 환자에겐 약 처방전 대신 고기 사 먹을 돈을 내주기도 했다. 그가 성자로 존경받은 이유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들과 힘을 모아 ‘부산기독의사회’를 만들어 행려병자들을 치료하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드는 데 적극 동참한 것이 그렇다. 의료보험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의료보험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뱅킹 같은 게 없던 때라 조합 직원들이 일일이 조합원 집을 방문해 돈을 거두러 다녀야 했다. 장기려 박사는 조합의 적자를 자신의 퇴직금으로 메우는 바람에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할 때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장기려 박사는 뛰어난 의술을 베푸는 의사이기 전에 항상 겸손하면서도,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고집쟁이로 비치기도 했다. 복음병원을 운영할 때 의사와 직원을 구분하지 않고 직원들의 식구 머릿수대로 월급을 지급했는가 하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신만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안 된다며 거절했다. 제자들이 자신의 흉상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싫어했다. 그의 뜻을 이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전에 그가 정성을 기울였던 간질환자 치료활동 단체인 ‘장미회’가 국경을 넘어 해외로 활동을 넓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기려 기념 의료선교센터’가 세워져 젊은 의사들이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 진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책 속에 나 있다 ‘의료보험’ 기반 닦고 쓰러져도 청진기 놓지 않아 돈 많이 벌어도 놀고먹으면 안 되는 이유 장기려 박사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고 고집했다. 한때 수십명 수백명을 돌보던 그였지만, 이제는 하루 열명도 벅찼다. 환자의 가슴까지 청진기를 들어 올리기가 힘에 겨워 간호사가 한 팔을 부축해 올려야 했고, 처방전의 필체는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누워 흘렀다. 그는 찾아오는 환자들을 다 만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해했다. “젊어서 돈 많이 번 다음에 일 안 하고 편하게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누구나 나중에 편하게 살려고 일하는 거 아닌가요?”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고, 돈을 웬만큼 벌면 일 안 하고 쇼핑이나 여행을 다니며 노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청소년들이 종종 있다. 돈이 많으면 놀고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 장기려 박사는 바보 중의 ‘바보’로 보일 것이다. 맘만 먹으면 의사라는 직업과 명성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했을까.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로 칭송되는 인도의 간디(1869~1948)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일하지 않고 얻는 부, 부도덕한 상거래, 도덕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마음에 울림이 없는 쾌락,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과학, 이기적인 신앙심을 지적했다. 이 가운데 ‘일하지 않고 얻는 부’는 복권과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등으로 대박을 기대하면서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병든다는 것이다. 간디는 불로소득이 우리 자신을 파괴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일은 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는 소속감을 갖게 해 안정감을 준다. 직업을 가져야 세금을 내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직업을 가지는 일차적 의미는 먹고살기 위한 생계유지에 있긴 하지만, 우리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한다. “구두닦이라도 사람이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싶어야 그 직업이 생기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그 사회가 하게 만들어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깨달아야 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회사 회장이었던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가 한 말이다. 돈을 많이 벌어 놀고먹는 것이 일을 하는 이유라면 큰 기업을 이끈 경영인이나 이미 성공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그냥 놀고먹어도 될 텐데 왜 계속 열심히 일을 할까? 그것은 돈이나 생계 수단 외에 일을 하는 다른 동기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 ‘일하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취도 보람도 없다. 성취와 보람이 없는 삶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와 같은 삶일 것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일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까.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진로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을 갖는 의미와 필요성, 직업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짚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 나대로 책 읽기 남을 먼저 생각하는 행복 깨닫게 됐어요
대영중 3학년 정진엽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 탁석산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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