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3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3
[난이도 수준-중2~고1]
문제는 ‘구라’다.
경박하다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구라, 구라를 잘 풀어야 한다. 구라가 빠지면 황폐하다. 이 글을 읽는 어린이와 청소년 여러분이 멋진 구라왕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양치기소년 같은 ‘뻥’의 요소는 뻥 차련다. 대신 ‘썰’의 의미만 품겠다. 사전에 없는 이 비속어에서 ‘혀 설’(舌)의 그림자를 본다. 비교육적이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오늘의 주제는 ‘구라와 썰’이다.
‘솔직히 새롭고 짠하게.’ 20여년 전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훈에 빗대어 만들어 본 말이다. 그때 교훈은 ‘스스로 더불어 알차게’였는데, 신기하게 아직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다. 교정 중앙 조회대 옆에 놓인 큰 바윗돌에 근엄한 글씨체로 새겨져 있었다. 딱 그 형식에 맞춰 ‘솔직히 새롭고 짠하게’라는 말을 인상적인 글쓰기를 원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트라이앵글로 새겨주고 싶다. ‘솔직히’는 글쟁이의 기본 태도다.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자는 뜻이다. ‘새롭고’는 진부함을 깨는 일신우일신의 정신이다. 독자들은 뭔가 새로운 언어와 메시지에 반응한다. ‘짠하게’는 이야기다. 갈등과 절정과 추락과 반전의 우여곡절이 함축된 서사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믿음·소망·사랑 이 세 가지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솔직히 새롭고 짠하게, 이 세 가지 중 제일은 ‘짠하게’”라고 한다면 억지일까? 결국은 구라다. 이야기다.
감히 주장한다. 이야기가 없는 글은 시체다! 논리와 주장만이 담긴 글을 읽으면 기계를 만지는 느낌이다. 신문 사설을 읽을 때 종종 그렇다. 상황유형별로 적용언어가 입력된 ‘차가운 비판 기계’라고나 할까? 어릴 때 많이 참가했던 ‘반공 글짓기’의 원고나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서도 비슷하다. ‘규탄’은 있을지언정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는 없다.
출발은 ‘자기 이야기’다. 초딩 은서는 한때 일기만 쓰면 “참 즐거운 하루였다”로 끝나기 일쑤였다. 전쟁과 대비되는 평화의 개념은 소중하지만, 마냥 이렇게 평화롭다고만 하면 시시한 언어밖에 나오지 않는다. “별일 없이 산다”는 자랑은 이야기의 적이다. 아니, 별일 많게 살면서도 “별일 없이 산다”고 착각하는 게 더 문제다. 중딩 준석에게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올해 나의 사건 10’에 관해 써보라고 했다. 준석은 “여행도 별로 안 갔는데 일은 무슨 일?”이냐며 툴툴거렸다. 한데 막상 아빠의 강요에 의해 글을 써보니 추억이 넘쳐났다. 사소하게 여겼던 영화 관람이나 교회 합숙 등에도 나름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그때의 기억을 차근차근 되살리다 보니 근사하게 의미도 부여됐다. 경험의 총량만큼이나 경험을 글로 빚어내는 훈련이 중요한 셈이다. 이는 자신만의 감수성을 만들어준다. 이걸 ‘자기 가슴’이라 불러본다. ‘자기 가슴’에서 ‘자기 언어’가 나온다.
그다음은 ‘남의 이야기’다. 인류의 역사는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의 거대한 창고다. 소설도, 영화도, 음악도, 그림도 다 이야기다. 요즘 은서가 푹 빠진 드라마 <매리는 외박중>도 결국 이야기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은 “이야기를 많이 읽으라”는 뜻이다. 이야기가 힘이다. 내 이야기와 남 이야기의 총합은 기름이 펑펑 쏟아지는 글쓰기의 유전이다.
글에 이야기를 담자. 구라를 푼다고 생각하고 쓰자. 글쓰기 대회를 ‘구라왕선발대회’라 이름붙여도 재밌겠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글에 이야기를 담자. 구라를 푼다고 생각하고 쓰자. 글쓰기 대회를 ‘구라왕선발대회’라 이름붙여도 재밌겠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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