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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문체감식본부를 가동하자

등록 2010-12-20 09:45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34
[난이도 수준-중2~고1]

문체 감정 결과, 그는 소심한 남자로 드러났다.

“~하는지 모르겠다”가 2회당 평균 한 번은 등장했다. “중독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술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수세적인 태도다. 쓸데없이 묻거나 부탁을 한 뒤 시작하는 버릇도 있다.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유치하다고 나무라지 마시라.” 괜히 찔리나 보다. 자신없음일까? 아침에 뜨는 해도 아니면서 아이디어가 많은 척, “떠올랐다”를 수시로 띄우기도 한다. “과거를 회상하다 숙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침에 찢던 편지가 떠오른다.” 끝날 땐 ‘단순화’에 목을 맨다. “저널소년은 다른 말로 시사소년이다” “한마디로 인물묘사가 빠졌다는 말이다” 등등. “문제는 구라다” “결국은 리듬감이다”도 닮은꼴이다. 간명하게 압축하려는 강박! 일종의 편집증까지 엿보인다.

그 남자는, 나다. 그동안 이곳에 실었던 ‘글쓰기 홈스쿨’ 서른세 편을 다시 읽으며 현미경을 들이대 보았다. 이런 특징도 발견했다. “그때 나의 장난스런 좌우명은 이러했다.” “쉼표의 미덕이 과대평가되었음을 장난스레 과장해보았다.” 너 지금 장난하냐?^^

무의식적 습관의 접착력은 강하다. 양말을 나도 모르게 언제나 오른쪽이 아닌 왼쪽 발부터 신는 것과도 같다. 예전에 쓴 인터뷰기사 여러 편을 다시 읽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대부분이 “~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로 끝났기 때문이다. 탈고 직전이면 내 손끝이 자동으로 판박이 자판을 두드리며 춤춘 걸까?

남의 글에서도 무한반복의 양상을 씁쓸하게 목격한다. 어떤 이는 “~하는 터다”라는 표현을 떨쳐내지 못한다.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길들여져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이도 있다. ‘언죽번죽’ 따위의 순우리말 부사에 중독된 이도 있다. 일관성은 좋지만, 눈에 띄게 되풀이하면 독자가 질려버린다. “또 이 반찬이야?”가 아니라 “또 이 단어야?”다. 그렇다. ‘낱말투정’ 당할 수도 있다. 사람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듯 단어와 문장을 정기 검진해보면 어떨까? 제3자가 해줘도 좋지만, 스스로 할 수도 있다.

준석과 은서에게도 ‘문체 자가 진단’을 시켰다. 아이들은 ‘글쓰기 홈스쿨’을 하며 쓴 30여편의 글을 다시 읽었다. 분석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준석은 자신의 첫 특징으로 ‘그래서, 왜냐하면, 그리고의 무자비한 남용’을 꼽았다. ‘~하는가’ 같은 의문형이나 ‘생각해보아라’ 따위의 명령형이 잦다고도 했다. 맞다. 노래로 치면, 의문형과 명령형은 준석 글의 십팔번이다. 후반부에선 ‘~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가 나오기 일쑤라고 했다. 툭하면 터져나온다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은 아빠와 비슷하다. 문체 감정 결과, 준석의 반듯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은서도 자신의 글을 열심히 해부했다. 먼저 나온 건 ‘쉼표의 공해’였다. 이유가 웃긴다. “난 말이 많아 숨을 돌릴 때가 많은데,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쉼표를 넣는가 보다.” 물결표(~)를 좋아한다는 대목은 가소롭다. “‘참 재미있당’이랑 ‘참 재미있당~’ 중에서 어떤 문장이 더 재미있나? 앞의 것은 무뚝뚝하고 싸늘하지만 뒤의 것은 애교 있다.” 이모티콘이 빠지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문체 감정 결과, 은서는 산만한 애교파였다.

자신이 무슨 낱말과 문장을 편애하는지 정확히 알자. 되도록 풍부한 대체어휘를 마련하자. 식상한 글은 ‘지겨운 단어’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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