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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석유 고갈이 유토피아를 부른다?

등록 2011-03-14 09:37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20. (거의) 석유없는 삶 - 고유가가 꼭 재앙일까?

<(거의) 석유 없는 삶>제롬 보날디 지음 성일권 옮김/고즈윈

‘석유 시대’는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석유는 지난 200년의 눈부신 발전을 떠받쳐온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석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년 안에 유가가 배럴당 360달러를 웃도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 모른다.

이런 근심을 들으면 반론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과학기술이 석유를 대신할 에너지원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유전을 찾아내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많이 석유를 캐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프랑스 지식인 제롬 보날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태양광, 풍력 등 대체 에너지의 개발속도는 석유의 고갈 속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 긴 연구기간과 엄청난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이에 대한 성과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떠올려 보라. 나아가, 더는 대규모 유전이 나타날 가능성도 없다. 유가가 지금같이 높다면 유전 탐사는 남는 장사여야 맞다. 석유를 조금만 팔아도 이익이 크게 남으니, 높아진 채굴 비용을 충분히 뽑아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전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석유재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제롬 보날디는 다리에 힘을 풀릴 만한 비밀을 들려준다. 더 이상 큰 유전을 발굴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익이 날 가능성이 없는데도 일을 벌일 기업은 없다. 더구나 과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각 나라의 매장량에 따라 석유 생산권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니 산유국들은 땅속에 묻힌 석유량을 부풀려 발표하곤 했다. 실제 매장량은 지금까지의 추측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수십년 안에 ‘거의 석유 없는 삶’이 현실이 되리라는 뜻이다.

지금 어린 학생들은 자기 인생 중에 ‘거의 석유 없는 세상’을 맞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날디가 예언하는 미래는 별로 어둡지 않다. 석유 고갈이 오히려 ‘축복’처럼 다가올 정도다.

석유가 사라지면 청년 실업부터 자취를 감출 터다. 모든 일을 사람 힘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일손은 항상 부족하다. 사람들은 대도시를 떠나 소도시로, 농촌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에 따라 지역 경제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마을 공동체 정신도 자연스레 돌아올 것이다.

<(거의) 석유 없는 삶>제롬 보날디 지음 성일권 옮김/고즈윈
<(거의) 석유 없는 삶>제롬 보날디 지음 성일권 옮김/고즈윈

거의 석유 없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넝마주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살뜰하게 끝까지 쓰이게 될 테다. 알루미늄같이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드는 물건은 ‘금값’이 되어 소중하게 재활용될 것이다.

교통수단에도 큰 변화가 온다. 말이 주요한 탈거리로 다시 떠오르고, 뗏목도 다시 등장한다. 작은 마을을 잇는 합승마차가 등장해 지금의 버스노선의 역할을 떠맡게 될지도 모른다.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걱정도 된다. 말들이 숱하게 쏟아낼 똥들은 어쩌란 말인가?

말똥은 그때가 되면 ‘폐기물’이 아니라 훌륭한 ‘자원’으로 대접받는다. 심지어 말똥을 놓고 이권다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오줌도 꼭 자기 밭에 누려 하지 않았던가. 지방 정부들은 말똥을 이권 삼아 마구간 지을 땅을 확보할 터다.

먹거리 또한 자연스레 ‘참살이’(웰빙)로 바뀌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다. 너무 비싸진 까닭이다. 반면, 비싼 전기료와 사료 값을 당해내지 못하기에 쇠고기, 닭고기를 ‘생산’하던 공장식 농장(factory farm)들도 사라지게 된다. 소와 닭, 돼지는 옛날처럼 뒷산과 풀밭을 뛰어다니며 자란다. 당연히 항생제 쓸 일도 줄어든다. 채소나 생선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텃밭과 마을 주변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와 ‘무공해 쇠고기, 닭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

거의 석유 없는 세상에서도 인터넷 같은 첨단 기술은 미래에도 큰 도움을 준다. 물물교환과 품앗이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더욱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리눅스가 여러 프로그래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졌듯, 미래의 기술자들도 물자와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법, 물레방아 같은 작은 수력발전을 솜씨 있게 돌리는 법 등을 놓고 힘을 모을 것이다.

제롬 보날디는 ‘거의 석유 없는 시대’를 결코 어둡게 그리지 않는다. 석유가 떨어지면 인류는 ‘축제의 다음날, 술에서 깨 보니 길바닥에 누운 채 돈도 떨어지고 비참해져 있는 모습’ 같은 자신을 깨닫게 되리라. 석유가 사라지면 모든 것은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되찾는다. 볼펜 하나, 옷 한 벌은 ‘소비재’를 넘어서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오일쇼크로 휘청거리던 1970년대에는, 21세기 이전에 석유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석유 생산량은 그 후로도 늘기만 했다. 지금의 공포도 ‘해프닝’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거의) 석유 없는 삶>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부잣집 자식일수록 돈에 집착한다. 돈 없이 사는 법을 배운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까닭이다. 석유에 기대는 우리 문명도 비슷한 모양새다. 석유 없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안다. 그러나 석유 없는 세상은 탐욕과 시기심이 사라진 ‘천국’일 수도 있다. 낭비가 사라지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건강한 음식을 먹는 ‘참살이’는 석유의 종말과 함께 올 테다. 물론, 철저하게 대비했을 때만 그렇다.

리비아에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다. 통치자 카다피는 자기 나라 정유시설을 폭격하기까지 했단다. 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럴수록 시내 도로는 한산해지고 공기도 한결 맑아진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 없으면 죽는 줄 안다. ‘석유 중독’에 빠진 우리 문명도 별다르지 않다. 위기는 기회다. 지금의 석유위기가 한껏 늘어난 우리 욕망의 뱃구레를 다스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사브리핑: 리비아 사태와 유가 폭등지난 2월 출근시간대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수도권으로 유입된 차량 대수가 1만대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국도로공사가 밝혔다. 남산터널 등 주요 정체 구간 수도 크게 줄었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은 고유가 시대의 모습이다. 리비아 사태가 유전을 폭격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닿은 상황이어서 유가 고공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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