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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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수준-고2~고3]
21. 변호사 논증법 - 자비의 원칙과 역지사지, 억울함을 푸는 변호의 기술
<변호사 논증법>최훈 지음웅진지식하우스
금연구역, 한 사내가 태연하게 담배를 빼어 문다. 기가 막힌 직원이 말을 건다. “손님,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사내는 대꾸한다. “왜 안 되죠?”
황당한 상황, 말이 턱 막힌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논리학에서는 ‘입증책임’이 중요하다. 주장을 하려면 왜 그런지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의(?)’를 받은 나는 왜 담배를 여기서 피우면 안 되는지 이유를 설명해줘야 한다. 하지만 삐딱한 상대가 내 설명을 받아들일 리 없다. 흡연금지 표시를 가리키면 왜 여기가 금연구역이나며 따지고 들지도 모른다. 억지춘향식 논리를 들이대는 상대와 논쟁하는 일은 무척 난감하다.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대꾸해야 할까?
<변호사 논증법>은 이 물음에 답을 알려준다. 주장을 하는 쪽이 왜 그런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주장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다. 이런 경우에는 색다른 논리를 펴는 쪽이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가 금연구역에서 왜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대화 상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손님,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됩니다.” “왜 안 되죠?” “손님은 왜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입증책임을 상대에게 되돌리는 방법이다. 아마도 손님은 당황한 표정을 짓게 되리라. 정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돈 관계가 깨끗한 정치인이 뇌물을 받았다고 소문이 났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먼저 나서서 그런 적 없다며 구구절절 해명할 필요 없다. 그럴수록 의심의 눈초리만 더 커져갈 테다. ‘입증책임’은 소문을 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의혹을 내세운 쪽이 뇌물이 오고 간 ‘증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흥분하지 말고 상대에게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입증책임이 상대에게 넘어가면 논쟁에서의 승패도 가름이 되기 마련이다. 논쟁이란 입증책임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다. 설명을 해야 하는 쪽이 적절한 이유를 들이밀지 못할 때, 논쟁에서 지게 된다. 그러나 올곧은 사람이 말싸움에서 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식이 짧고 논리가 부족해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낼 능력이 없는 탓이다. 변호사는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다. 이들은 양쪽의 입장을 헤아리며 논증의 허점을 찬찬히 짚어낸다. 논리학자 최훈 교수는 변호사들한테서 논쟁의 바람직한 자세를 찾는다. 변호사들은 무조건 자신에게 도움을 부탁한 사람 편에 선다. 심지어 아버지를 죽여서 손가락질받는 자도 가리지 않는다.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살인자의 처지를 헤아리려 한다. 진짜 아버지를 죽였을까? 죽였다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최훈 교수는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을 논리의 기본으로 꼽는다. 상대가 어떤 주장을 펴건, 비판부터 하지 않는다. 먼저, 상대의 주장에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최대한 이해부터 하려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원칙’도 중요하다.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내 주장의 문제와 허점을 점검해 보라는 뜻이다. 변호사들은 자비의 원칙과 역지사지의 원칙을 철저하게 따른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聖人)을 정할 때는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를 내세웠다. 성인으로 꼽힐 정도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겠다. 그럼에도 악마의 변호사로 임명된 성직자는 성인의 잘못과 허점을 꼬집어 내느라 열심이었다. 악마의 편에 서서 성인의 단점을 찾고 또 찾았다.
자칫하면 성인의 높은 이름에 흠을 남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악마의 변호사는 주저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맞선 ‘하나님의 변호사’는 지적이 옳지 않음을 보여야 했다. 왜 이런 작업을 했을까?
‘교회의 적들’ 편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악마의 눈으로 헤집어 보아도 허점을 찾지 못했다면 어떨까? 성인의 위대함은 한껏 더 돋보인다. 어떤 반론과 비판이 쏟아져도 성인의 명성은 흔들리지 않을 테다. 자비의 원칙과 역지사지의 원칙은 상대를 헤아릴 뿐 아니라, 나의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논점 일탈’도 조심해야 한다. 영어에 ‘훈제 청어’(red herring)라는 표현이 있다. 옛날, 경찰이 푼 개에 쫓기는 사람들은 구운 청어를 흔들어댔단다. 개가 청어에 넋이 팔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논리가 궁한 이들도 비슷하다. 궁지에 몰리면 쟁점과 관계없는 이유들을 들이대며 정신을 흩뜨려 놓는다. 불쌍한 척하며 감정에 호소하거나, “너는 원래 그런 놈이었어”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늘어놓는다. 이럴 때도 훈련된 변호사들은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다. “말씀하신 것은 지금 논의와 상관없습니다”라며 명확히 선을 그을 테다.
때로는 내놓는 근거가 적절한지 헷갈릴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반대되는 주장이 틀리게 되는지 검토해 보면 된다. “불법 다운로드 단속은 옳지 않다. 소프트웨어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예로 들어보자. 비싸서 불법 다운로드 해도 죄가 안 된다면, 싼 소프트웨어는 불법 다운로드 해도 죄가 안 될까? 이처럼 <변호사 논증법>은 잘잘못을 가리는 논리 기술들을 흥미진진하게 일러준다.
배우 고 장자연씨의 숨겨진 편지가 나와 세상이 시끄러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편지가 위조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비의 원칙’은 이 경우에도 남는다. 왜 사람들은 장자연씨 사건에 또다시 엄청난 관심을 쏟았을까? 편지가 조작임이 드러났다 해도, 그간의 의혹이 모두 해명되는 것도 아니다. 부디 억울함을 푸는 ‘변호사의 논증법’이 장자연씨의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변호사 논증법>은 이 물음에 답을 알려준다. 주장을 하는 쪽이 왜 그런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주장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다. 이런 경우에는 색다른 논리를 펴는 쪽이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가 금연구역에서 왜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대화 상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손님,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됩니다.” “왜 안 되죠?” “손님은 왜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입증책임을 상대에게 되돌리는 방법이다. 아마도 손님은 당황한 표정을 짓게 되리라. 정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돈 관계가 깨끗한 정치인이 뇌물을 받았다고 소문이 났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먼저 나서서 그런 적 없다며 구구절절 해명할 필요 없다. 그럴수록 의심의 눈초리만 더 커져갈 테다. ‘입증책임’은 소문을 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의혹을 내세운 쪽이 뇌물이 오고 간 ‘증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흥분하지 말고 상대에게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입증책임이 상대에게 넘어가면 논쟁에서의 승패도 가름이 되기 마련이다. 논쟁이란 입증책임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다. 설명을 해야 하는 쪽이 적절한 이유를 들이밀지 못할 때, 논쟁에서 지게 된다. 그러나 올곧은 사람이 말싸움에서 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식이 짧고 논리가 부족해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낼 능력이 없는 탓이다. 변호사는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다. 이들은 양쪽의 입장을 헤아리며 논증의 허점을 찬찬히 짚어낸다. 논리학자 최훈 교수는 변호사들한테서 논쟁의 바람직한 자세를 찾는다. 변호사들은 무조건 자신에게 도움을 부탁한 사람 편에 선다. 심지어 아버지를 죽여서 손가락질받는 자도 가리지 않는다.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살인자의 처지를 헤아리려 한다. 진짜 아버지를 죽였을까? 죽였다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변호사 논증법> 최훈지음/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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