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1년 동안의 암 치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두 가지가 큰 ‘과제’로 다가왔다. 시각장애아의 엄마로서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그리고 키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무엇이 더 쉬웠을까? 둘 다 막막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의 경중이 분명해졌는데, 예상을 뒤엎고 시각장애아의 엄마가 되는 일이 더 쉬웠다. 시신경은 이미 손상되어 되돌릴 방법이 없었으므로 오직 ‘어떻게’에만 집중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큰 글씨 책이 나을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는 무엇일까? 음성은 언제부터 도움이 될까 등등을 고민하면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솔루션을 더듬더듬 찾아갔다. 아이가 식탁에 차려진 반찬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발밑의 웅덩이를 보지 못해 나뒹굴면 마음이 찢어졌지만, 찢어진 내 마음이야 혼자 꿀꺽 삼키고 “앞에 있는 건 시금치, 그 뒤에 있는 건 돈가스야” 하고 도와주면 되었다.
그러나 ‘키’에 관한 것은 아주 복잡했다. 간단하게는 매일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되었는데, 암세포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선택 자체가 쉽지 않았다. 130㎝에서 멈출 것이라는 선고를 듣고 아이는 “그렇게 살 수는 없어”라며 매일 주사 맞기를 선택했으나 백혈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병이 찾아온 후 그 방법은 취할 수 없었다.
성장판이 1~2년 안에 완전히 닫힐 것이니 조치를 취하려면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내분비과 의사의 말을 듣고 아이와 같이 고민했다. 도대체 이놈의 ‘키’가 왜 이리 문제가 되는가. ‘키’의 기능이란 무엇이며 큰 키와 작은 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다리의 길이는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키’에 대한 열망과 애착은 외모가 힘인 현대사회에서 폼이 나고 싶다는 욕망일 뿐이었다. 아무리 긴 다리일지언정 움직일 수 없다면 키가 다 무슨 소용인가. 걷고 뛰니 더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완전히 ‘키’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의 작은 키는 독특함과 매력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책에도 쓴 나의 ‘정신승리’ 이야기다. 큰아이는 대학에 입학한 뒤에야 자신에 관해 엄마가 쓴 책을 읽었는데 소감이 딱 한마디였다. “엄마, 키가 문제가 안 되는 건 아니야. 나는 키가 작아서 불편해. 전철 손잡이도 잡을 수 없고, 싱크대 상부장도 열기 어렵고, 설거지도 힘들어.”
그 말은 내 뒤통수를 호되게 후려쳤다. 나는 아이의 작은 키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며 정신을 편안하게 만들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아이는 꾸준히 불편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가 처한 구체적인 어려움에 눈감고 말았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위한다면서 얼마나 내 생각만 해온 걸까. 그러니 아이 때문에 속상하다는 모든 말은 한 번쯤 되물어볼 일이다. ‘힘든 건 아이인가, 나인가. 혹은 내가 더 힘든가, 아이가 더 힘든가’라고.
김경림 ㅣ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