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10월13일 신영철 법원장이 분주했던 까닭은
10월9일 국감서 여당의원에 “젊은 판사 가르쳐야” 질타 받고…
“보석 석방자들이 촛불 세결집” 보수신문 대서특필에 긴장한 듯
10월9일 국감서 여당의원에 “젊은 판사 가르쳐야” 질타 받고…
“보석 석방자들이 촛불 세결집” 보수신문 대서특필에 긴장한 듯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관여’ 여부를 판단하면서 제시한 근거의 상당 부분은 지난해 10월13일에 이뤄졌던 신 대법관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날 신 대법관은 헌법재판소를 방문했고, 형사단독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보석 결정을 신중하게 하라”고 말했다. 오후엔 형사단독 판사 14명을 불러 “위헌심판과 상관없이 재판을 진행하라”고 독촉하는 등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무엇이 신 대법관을 이처럼 초조하게 만들었을까?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현안질의에서도 이런 의문이 쏟아졌다.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신 대법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왜 그렇게 했는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동기가 조사 결과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신 대법관이 당시 네 번째 대법관 도전을 앞두고 시국사건 처리에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 단독판사들은 “평소에 그렇지 않던 분이 그땐 집요했다. 이 때문에 다른 외부 작용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며 의문을 거두지 않지 있다. 신 대법관은 “내 소신 때문에 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10월13일 전후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몰렸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사태의 발단은 10월9일 박재영 판사의 위헌심판 제청 결정이었다. 법원에서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 제청을 한 전례가 없어 파장이 컸다. 공교롭게도 이날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국정감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박 판사가 재판 중에 촛불 피고인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점을 문제삼았다.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은 “젊은 판사들을 자주 만나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박 판사의 위헌심판 제청 소식은 신 대법관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 대법관이 당황스러워 할 만한 일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또 다른 단독판사가 공안당국이나 여당이 ‘촛불 선동자’로 지목했던 누리꾼 ‘권태로운 창’과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의 보석을 허가한 것이다. 이어지는 주말엔 ‘조계사 천막농성 100일 촛불문화제’가 열려 ‘촛불 시즌 2’가 예고됐다. <조선일보>는 13일(월요일)치에 ‘보석으로 나온 이들이 주말 촛불문화제 때 나와 세 결집을 시도했다’고 보도해 ‘결정타’를 날렸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17일 국회 법사위 답변에서 “보석으로 나간 사람들이 ‘제2의 촛불집회’를 한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돼 (신 대법관이) 걱정을 한 것 같다”며 당시 보도가 부담을 줬다는 점을 에둘러 인정했다. 결국 신 대법관은 13일 아침부터 급박하게 움직여 다음날 예정된 대법원장 보고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신 대법관이 외부 메시지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정황은 아직 없다. 어찌됐든 9~13일 사이 신 대법관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상황들이 14일 ‘대법원장의 뜻’이라는 전자우편으로 이어진 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이용훈 대법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 대법관이 당황스러워 할 만한 일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또 다른 단독판사가 공안당국이나 여당이 ‘촛불 선동자’로 지목했던 누리꾼 ‘권태로운 창’과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의 보석을 허가한 것이다. 이어지는 주말엔 ‘조계사 천막농성 100일 촛불문화제’가 열려 ‘촛불 시즌 2’가 예고됐다. <조선일보>는 13일(월요일)치에 ‘보석으로 나온 이들이 주말 촛불문화제 때 나와 세 결집을 시도했다’고 보도해 ‘결정타’를 날렸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17일 국회 법사위 답변에서 “보석으로 나간 사람들이 ‘제2의 촛불집회’를 한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돼 (신 대법관이) 걱정을 한 것 같다”며 당시 보도가 부담을 줬다는 점을 에둘러 인정했다. 결국 신 대법관은 13일 아침부터 급박하게 움직여 다음날 예정된 대법원장 보고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신 대법관이 외부 메시지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정황은 아직 없다. 어찌됐든 9~13일 사이 신 대법관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상황들이 14일 ‘대법원장의 뜻’이라는 전자우편으로 이어진 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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