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떨어지면 손발 차가워진다” 말듣고 뜨개질
10일 오전 6시30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손엔 벙어리 장갑이 끼워졌다. 면회온 부인 이희호(88)씨가 한땀 한땀 손수 짠 것이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맏아들 김홍일 전 의원이 다녀갔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어제는 큰아들 홍일이가 왔어요. 기쁜 소식이 많으니 빨리 일어나세요.” 하루 전인 9일 0시께 혈압이 떨어지는 등 고비를 맞았던 김 전 대통령은 이날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폐렴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지 29일째, 간병을 해오던 이씨는 3~4일 전부터 뜨개바늘과 따뜻한 느낌이 나는 상아색 털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방문객이 오면 뜨개질을 잠시 멈추고 인사를 받았고, 방문객이 가면 다시 뜨개질을 계속했다. 장갑 한 켤레를 하룻만에 다 떴다.
김 전 대통령의 발에는 이씨가 정성 들여 만든 덧신이 신겨져 있다. 혈압이 떨어지면 손발이 쉬 차가워진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의료진이 ‘혈압이 떨어지면 손발이 차가워진다’고 하고, 실제 손발이 차가워졌다고 느끼셨는지 여사님이 갑자기 뜨개질을 시작하셨다”며 “의료진도 ‘덧신과 장갑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비서관은 “여사님이 뜨개질로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 듯하다”며 “1970년대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 계실 때도 목도리 등을 떠서 드렸다고 하는데, 남편의 손발 체온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아내의 마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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