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상황이 현실서 벌어져
북쪽 형 이쾌석씨, 남쪽 동생 가져온 술 권하자
“오마니 잊지 않았다…부모님 영전에 드려라”
북쪽 형 이쾌석씨, 남쪽 동생 가져온 술 권하자
“오마니 잊지 않았다…부모님 영전에 드려라”
59년 전 국군으로 징집됐다가 실종된 형, 형을 찾겠다며 자원 입대했다가 12년을 복무한 동생이 26~27일 감격 속에 만났다. 그러나 애타게 장남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뒤늦은 부고에, 북쪽의 장남은 비통한 눈물을 쏟아냈다.
26일 2년 만에 금강산에서 다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쪽에 있는 ‘국군포로’ 이쾌석(79·사진 왼쪽)씨는 남쪽의 동생 정호(76·오른쪽), 정수(69)씨와 59년 만에 상봉했다. 쾌석씨는 1950년 6월25일 전쟁이 일어나자 징집됐다가 실종됐다. 동생 정호씨는 형을 찾겠다며 52년 자원 입대했다가 12년간 군생활을 한 뒤 63년 형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서야 제대했다. 형제를 찾으려고 전쟁터에 나선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상황이 이들에게 벌어졌던 셈이다.
형 쾌석씨는 26일 단체상봉에서 “1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정호씨의 말에 “나는 오마니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쾌석씨는 27일 개별상봉에선 동생이 준비해온 술도 마다하며 “부모님 영전에 갖다 드려라”고 했다고 정호씨는 전했다. 쾌석씨는 또 동생들이 가져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전 사진을 꼭 잡고 뚫어지게 보다, 아무 말 없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동생은 “이 술을 가져다 꼭 어머니에게 형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하겠다”며 늙은 형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정호씨를 비롯한 남쪽 이산가족 방문단 97명과 북쪽에 사는 가족 228명의 상봉이 이뤄진 금강산은 26~27일 잇달아 눈물의 바다를 이뤘다. 인민군 징집을 피해 1·4후퇴 때 월남한 김기성(82)씨는 단체상봉에서 고향인 평안남도 진남포에 두고온 아들 정현(63), 딸 순애(61)씨와 만났다. 헤어질 당시 네살과 두살배기였던 아들과 딸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노년이 됐다. 김씨는 “미안하다. 피난갈 때 못 데려가서 미안하다.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윤기달(89)씨도 휠체어를 타고 북의 아들 승선(69)씨와 딸 옥선(67), 규환(64)씨를 만났다. 둘째 딸 옥선씨가 아버지 손을 꽉 잡는 바람에 윤씨 손에선 피까지 흘렀다. 두달 전 큰 수술을 받고도 방북한 윤씨는 “내가 너희들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나 보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어머니는 아버지만 기다리다가 1965년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자식들의 이야기에 기어이 고개를 떨구고 통곡했다. 남쪽 이산가족 상봉단은 26일 단체상봉과 27일 개별상봉을 한 데 이어, 28일 오전 작별상봉을 하고 다시 기약없는 이별의 귀환길에 오른다. 27일 오후 예정됐던 야외상봉은 궂은 날씨 때문에 실내 상봉 행사로 대체됐다. 이어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진 북쪽 이산가족 방문단 99명이 남쪽에 사는 가족 449명과 금강산에서 만난다. 남쪽 방문단 상봉행사에 참석하려고 금강산에 온 장재언 북쪽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첫날인 26일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만나 “이번 상봉은 북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이다. 이에 대해 남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유 총재가 27일 전했다. 유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쪽이 쌀이나 비료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며 “적십자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지 하겠지만 (쌀·비료 지원과 같이) 국민의 세금에서 큰 돈을 내는 문제는 당국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쪽이 대북 지원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비쳤지만, 쌀·비료 등의 대규모 지원은 당국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기존 태도를 고수했다는 뜻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남북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7일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 뒤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남쪽 김원숙(왼쪽)씨가 젓가락으로 아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윤기달(89)씨도 휠체어를 타고 북의 아들 승선(69)씨와 딸 옥선(67), 규환(64)씨를 만났다. 둘째 딸 옥선씨가 아버지 손을 꽉 잡는 바람에 윤씨 손에선 피까지 흘렀다. 두달 전 큰 수술을 받고도 방북한 윤씨는 “내가 너희들을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나 보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어머니는 아버지만 기다리다가 1965년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자식들의 이야기에 기어이 고개를 떨구고 통곡했다. 남쪽 이산가족 상봉단은 26일 단체상봉과 27일 개별상봉을 한 데 이어, 28일 오전 작별상봉을 하고 다시 기약없는 이별의 귀환길에 오른다. 27일 오후 예정됐던 야외상봉은 궂은 날씨 때문에 실내 상봉 행사로 대체됐다. 이어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진 북쪽 이산가족 방문단 99명이 남쪽에 사는 가족 449명과 금강산에서 만난다. 남쪽 방문단 상봉행사에 참석하려고 금강산에 온 장재언 북쪽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첫날인 26일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만나 “이번 상봉은 북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푼 것이다. 이에 대해 남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유 총재가 27일 전했다. 유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쪽이 쌀이나 비료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며 “적십자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지 하겠지만 (쌀·비료 지원과 같이) 국민의 세금에서 큰 돈을 내는 문제는 당국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쪽이 대북 지원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비쳤지만, 쌀·비료 등의 대규모 지원은 당국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기존 태도를 고수했다는 뜻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