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공군기지 근처인 동구 불로동 주택가 위로 지난 25일 전투기가 소음을 내며 날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하루 수십번 소음과 전쟁 “귀 예민한 아이들 치명적”
수면장애·재산가치 하락…주민 24만명도 피해 호소
수면장애·재산가치 하락…주민 24만명도 피해 호소
“크르르쏴아…”, “으앙….”
지난 22일 오후 2시께, 대구시 동구 방촌동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이이들의 울음소리가 잇따라 터졌다. 인근 군비행장에서 전투기 4대가 10초 간격으로 이륙한 직후였다. 창문은 덜덜 떨렸고, 바닥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우는 아이들을 달래기 바빴다. 점심을 먹고 곤히 낮잠을 자다 깬 세살배기 남자아이를 껴안고 토닥였고, 거실 한쪽에서 놀다가 전투기 소리에 달려온 다섯살 여자아이한테는 “곧 지나갈 거야, 괜찮아”라며 달랬다. 교사들은 이렇게 하루 수십번씩 전투기 소음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대구 케이2(K-2) 공군기지에서 200m가량 떨어져 있다. 김아무개 원장은 “아이들은 귀가 예민해 어른들보다 소음이 더 크게 들릴 것”이라며 “청각기능이나 정서적인 차원에서 전투기 소음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과의 대화도 전투기 이륙 소리 때문에 중간중간 끊어졌다.
아이들뿐 아니라 대구 공군비행장 주변 24만여명의 주민들도 청력손상과 수면장애, 정신적 피해, 재산 가치 하락 등을 호소하고 있다. 해안동에 사는 권영춘(59)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권씨는 2년 전 살았던 지저동보다 소음이 덜할 것 같아 이사를 왔는데 오히려 소음이 더 심해졌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권씨는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공군기지에서 야간비행을 한 다음날 새벽 출근을 하면 머리가 멍하다”고 덧붙였다.
전투기 소음에 오래 시달리면서 주민들은 항공기 박사가 다 됐다. 이성윤(63)씨는 비행장이 훤히 보이는 다세대주택 4층에서 기지 안쪽을 설명했다. “소리만 들어도 알지. 아 저건 수송기, 저건 여객기….”
이씨는 소음 때문에 동네가 낙후됐다고 했다. “여기는 지하철이 아주 가까운데도 다른 곳보다 집값이 훨씬 싸지. 못사는 사람들만 이 동네를 빙빙 도는 거야.” 근처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이 지역이 소음피해가 덜한 곳보다 약 20% 싸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몇명만 모이면 자연스레 보상금이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은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피해보상 소송 판결에 분노하고 있었다. 소음이 85웨클 이상인 지역의 주민들에게만 보상을 하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재혁 대구경북 녹색연합 운영위원장은 “수인한도(견딜 수 있는 한도)를 85웨클로 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대구법원이 이전할 곳을 찾으면서 동구를 물색했다가 시끄러워 안 된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법원이 주민들의 수인한도를 85웨클로 판단해 놓고 자신들은 조용한 곳에서 일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석동에 사는 오영숙(57)씨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85웨클이 안 돼 보상을 받지 못하는 집이 있다”며 “똑같이 시끄러운데 누군 보상받고 누군 보상받지 못해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매번 번거로운 소송을 해야 하는 대신 군소음특별법이 제대로 제정되길 바라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정확한 소음도와 주민 피해상황이 파악돼야 하며, 애초 논의됐던 것처럼 75웨클 이상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보상과 95웨클 이상 지역 주민들의 이주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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