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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6월18일] 고객응대 서비스직, 일에 쫓겨 “점심밥을 마신다”

등록 2013-06-17 20:42수정 2013-06-19 10:28

케이블티브이방송 티브로드 수리기사 신영재 씨가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9동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동료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케이블티브이방송 티브로드 수리기사 신영재 씨가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9동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동료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점심밥은 잘 먹고 다니시나요?”

<한겨레>가 17일치 신문부터 ‘당신의 점심 안녕하십니까’ 기획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4회에 걸쳐 직장인의 점심식사를 ‘기본적 인권’의 차원에서 점검하려 합니다.

직장인들이 퇴근시간 다음으로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지요. 상사 눈치 보느라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쪽잠이라도 자보려 하지만 눈치 보여 화장실만 기웃거리신다고요? 아예 일에 쫓겨 점심시간을 못 챙기는 경우도 많다고요? <한겨레>가 직장인 여러분의 점심시간 권리 찾기에 나섭니다.

이를 위해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받으려 합니다. △점심시간에 대한 불만 △점심과 관련해 바라는 점 △현재 몸담고 계신 직장의 점심 메뉴와 식비 등 점심과 관련한 어떤 의견이든 이 기사의 댓글에 남겨주세요. 주신 의견들을 기획기사 ‘④ 점심이 있는 삶을 위하여’에 반영하겠습니다.

케이블TV 수리기사·상담원 등
점심시간 관계없이 업무 밀려
항의 많으면 업무평가 나빠지고
시간당 통화건수따라 등급 좌우
동료들 미안해서도 여유 못부려
“사용자가 점심시간 보장해줘야”

‘설치.’ 두 글자가 야속하게도 피디에이(PDA)에 반짝였다. “꼬르르륵.” 배꼽시계가 정확하게도 낮 12시를 알리던 찰나다. 케이블 텔레비전 수리기사 이영진(39)씨는 애써 허기를 누르며 급히 시동을 걸었다.

본사 서비스센터에서 피디에이로 작업을 ‘꽂으면’ 이씨 같은 수리기사는 즉각 출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작업당 시간은 30분으로 잡혀 있고, 시간을 못 맞추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항의가 많을수록 업무평가는 나빠진다. 30분짜리 작업이 지속적으로 ‘꽂히기’ 때문에 일처리가 한 번 늦어지면 업무는 계속 밀린다.

케이블 텔레비전 수신기 설치를 마치자, 시계는 낮 12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12시부터 1시간이 주어진 점심시간의 절반이 지나가 버렸다. 오후 1시부터 꽂혀들어올 작업들을 고려하면 머뭇거릴 새가 없다. 오늘도 이씨는 차 안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거의 ‘마시는’ 수준으로 해치워야 한다.

‘내일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야 할까? 낮 12시에 설치 접수를 받지만 않아도 좋으련만….’ 회사에선 “점심시간밖에 시간이 안 된다”는 고객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이씨는 더구나 협력업체 소속이다. 본사와 협력업체 양쪽 눈치에, 점심시간 1시간을 지켜달라고 주장하기도 곤란한 처지다. 매일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설치’가 꽂히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서울 다산콜센터의 상담원 김영아(41)씨의 점심도 비슷하다. 상담원 500여명에겐 1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3곳의 용역업체 소속인 500여 상담원들은 업체에 따라 시간 차를 두고 5~10명씩 조를 짜서 1시간씩 식사를 해결하는 식으로 24시간 일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장콜’(긴 통화)이 걸려오면 예외다. 점심시간 시작 3분 전 장콜이 뜨면 30~40분은 쉽게 흘러간다. 이럴 경우 남은 20~30분 안에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여유있게 점심을 들고 돌아와도 된다. 업무 등급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급여가 깎이는 걸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점심시간 외에 자리를 비우는 시간은 철저히 계산된다. 특히 오전 11시~오후 3시는 점심시간이 겹쳐 있어 ‘취약시간’으로 지정돼 있다. 취약시간대에 기본 통화수(1시간에 13건)보다 많게 처리하는 상담원은 업무 등급이 올라간다. 하루에 몇 건의 전화를 처리하느냐에 따라 5개 등급이 매겨지는데, 등급에 따라 월급이 최대 2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점심식사를 짧게 해결하고 등급을 올리려는 동기 부여는 이렇게 이뤄진다. 김씨는 “등급을 높이려고 하지 않아도, 인원이 부족해서 점심시간에 일이 많은 걸 뻔히 안다. 동료들을 생각하면 점심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은 아예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24시간 환자를 돌보며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점심은 ‘알아서’ 교대로 짧게 먹어야 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인 김아무개(37)씨는 “교대 때문에 10분 만에 먹고 돌아와야 하는데, 구내식당 줄도 길어서 점심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일이 밀리면 퇴근까지 늦어져서” 김씨는 점심을 거르는 대신 짧은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밥 먹을 시간을 따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편하게 눈치 안 보고 30분이라도 쉴 시간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들은 점심시간을 번개처럼 보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보건의료 노동자 2만1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병원 노동자의 평균 점심시간은 22.9분이었다. 이 가운데 간호사는 18분, 환자이송 담당은 18.5분을 점심 먹는 데 썼다. 백화점·면세점 판매직원은 평균 점심시간이 각각 37.7분, 37.4분이었다. 노동환경연구소가 2008년 한 대형호텔 직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호텔 노동자의 평균 점심시간은 30.7분이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5~6월 직장인 6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점심시간이 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서비스직의 문제가 심각했다. 점심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적으로 25.2%였는데, 서비스직만 보면 38.1%에 이르렀다. 서비스직의 점심시간은 과다한 업무(66%) 때문에 잘 안 지켜지고 있었다. 업무 특성상 점심시간에도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점심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인원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밖에 회사 분위기(24.5%), 상사 눈치(5.7%) 등이 점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로 꼽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원은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대개 ‘밥을 마신다’고 할 정도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점심시간에 일한다고 해서 따로 근로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들은 적어도 법에 규정된 점심시간이나 휴게시간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유빈 기자 yb@hani.co.kr


점심시간 다급하면 업무도 ‘소화불량’

건강악화·태업으로 노·사 손해

충분치 못한 점심시간은 노동자나 회사 모두에 손해로 돌아간다.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 한 공립유치원 보육교사인 김아무개(28)씨에게 점심시간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시간이다. 6살짜리 아이들 10명과 함께 밥을 먹으며 식사지도를 한다. 김씨는 10분 안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양치지도를 한 뒤 곧바로 체조나 놀이활동을 시작한다.

밥 먹을 짬도 겨우 내고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다 보니 김씨는 자기도 모르게 졸거나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점심시간조차 쉬질 못하다 보니 오후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일처리도 늦어지고 아이들에게도 오전만큼 친절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아요.” 김씨는 보육교사로 일하며 위장병까지 얻었다. “밥을 빨리 먹는 게 습관으로 굳어져서 집에서도 다른 가족들보다 밥을 급하게 먹죠. 저뿐 아니라 보육교사들은 소화시킬 새도 없이 일해야 해서 위장병을 달고 살아요.”

점심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직장인들은 업무시간에 태업으로 억울함을 해소하기도 한다. 제약회사에서 경리일을 하는 박아무개(26)씨는, 점심시간이 오후 1시까지인데도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부장이 오후 12시45분이면 자리에 돌아오기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고작 10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업무시간에서 10분은 크거든요. 점심시간 1시간을 못 채우니 보상심리가 생깁니다. 업무시간에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딴짓을 할 때마다 못 쉰 10분을 채운다고 여기게 되죠.” 박씨는 “외부 약속이 있어서 1시간을 다 채워 점심식사를 한 날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몸의 각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외국에서는 그 시간 동안 낮잠시간을 보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휴식을 취하는 만큼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뿐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유빈 기자

톡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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