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오가는 지하철 통로의 한 벽면을 성형외과 광고판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한국여성민우회 공동기획
‘해보면’ 달라져요
<1> 외모 얘기 안하고 일주일 살아보기
‘해보면’ 달라져요
<1> 외모 얘기 안하고 일주일 살아보기
대학생 김아무개(23)씨는 지난달 29일 전국 총학생회장단이 모이는 수련회에 참석했다. “우와~연예인 ○○○ 닮은 거 같아요.” “눈이 참 예쁘시네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초면의 학생들은 저마다 ‘외모 칭찬’으로 말문을 터나갔다. ‘나도 좀 더 신경쓰고 왔어야 하나.’ 낯선 분위기를 깨기 위한 인사치레인 걸 알면서도 김씨는 공연히 “초라해지고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도 “머리를 길러보면 어때?” “렌즈를 껴보지”같이, 악의 없는 외모 ‘조언’이 이어졌다.
인터넷에는 연예인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담은 기사가 하루에도 수백건씩 쏟아진다. 이런 기사들을 ‘외모 지상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우리 역시 ‘좋은 뜻’으로 일상에서 건네는 옷이나 머리에 대한 언급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막상 듣는 사람은 피곤한데도 말이다. <한겨레>와 한국여성민우회가 일상의 작은 실천을 제안하는 ‘해보면 달라져요’ 프로젝트를 15일부터 시작한다. ‘나’부터 달라지면 살기 피곤한 곳이 된 대한민국도 바꿀 수 있다는 취지다. 수련회를 다녀온 뒤 ‘일주일간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고 살아보자’고 결심한 김씨를 포함한 20~40대 남자 둘, 여자 셋이 첫 도전에 나섰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칭찬’도 ‘지적질’도 모두 금지!
<한겨레>와 한국여성민우회가 함께하는 ‘해보면 달라져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20~40대 남자 둘, 여자 셋은 지난 1월29일부터 일주일 동안 외모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보기로 했다. ‘까짓, 결심이랄 것까지 있나’ 하며 참여한 프로젝트였으나, 참가자들은 시작부터 ‘아차차!’ 하는 순간에 부닥쳤다.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일주일은 도리어 얼마나 외모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살았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작은 성찰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는 취지의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업무시간 외 연락 않기, 불편한 농담에 웃지 않기 등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진다.
■ 선생님이 나한테는 ‘예쁘다’ 말해준 적 없는데… 여고 담임 경력 5년차인 교사 김아무개(30·여)씨는 최근 흠칫 놀라는 경험을 했다. 한 학생이 쉬는 시간에 자신을 찾아와 “쌤, 여기저기 뾰루지가 나요. 저 너무 못생긴 거 같아요”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김씨는 평소 이 학생이 ‘미인상’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너 정도면 정말 미인이야”라고 위로해줬다. 그때 옆에 있던 학생이 친구를 위로한다며 말했다. “맞아. 선생님이 나한테는 한번도 ‘예쁘다’고 말해준 적이 없어”라는 게 아닌가. 김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았다.
김씨는 적어도 학생들 앞에서만이라도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주일을 실천하기로 했다.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은 사춘기 여고생들 앞에서라 실천이 쉽지는 않다. “선생님, 옷 새로 사셨네요”, “오늘은 왜 안경 끼셨어요?” 외모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아이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외모에 대한 ‘평가’가 담긴 말을 빼고 ‘단답형’으로 답했다. 이런 작은 ‘실천’이 예민한 나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 “내 얼굴 오늘 괜찮은가요” 묻고 또 묻고 “와, 근육이 대단하세요, 멋져요.” 보험설계사인 윤아무개(35·여)씨에게 외모 칭찬은 고객 유치를 위한 ‘영업 전략’이다. 고객의 옷차림, 머리 모양, 몸 상태 등을 일부러 살피고 장점을 찾아 칭찬을 한다.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해 자신이 소개하는 상품에 대한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 윤씨의 일이다. 외모 칭찬은 윤씨에게 가장 쉬운 ‘무기’였다.
스스로에게도 철저한 외모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다. 윤씨는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날엔 머리를 말고 속눈썹을 붙이는 등 2시간 이상 준비를 한다. 솔직히 A컵 가슴이 B컵처럼 보일 수 있도록 볼륨 있는 속옷에 일부러 딱 달라붙는 겉옷을 챙겨 입는다. 그런 날이면 평소에 잘 말을 걸어오지 않던 동료들도 “요즘 고객 만나는 건 괜찮냐”는 둥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오늘 내 얼굴 까칠해 보이죠? 파우더가 잘 안 받나봐”, “오늘 내 모습이 영 아닌데, 이해 부탁해요.” 윤씨는 프로젝트 참여 첫날 만난 동료와 고객에게 자신의 외모 상태에 대해 얘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그동안 나 스스로가 꽤나 피곤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는 외모 말고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7살 딸도 벌써 외모 때문에 피곤해하더라 “돼지 새끼같이 뚱뚱해서 보기 더러워.” 직장인 김아무개(42)씨는 요즘 아내로부터 부쩍 이런 모진 ‘외모 지적질’을 당한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지만, 김씨는 아내의 그런 말이 야속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김씨는 자신 역시 출근 때부터 또래 동료들의 옷차림 등 외모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 옷 잘 입었네’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저 친구도 나처럼 아내의 지겨운 잔소리를 듣겠지’ 싶어, 그들을 외모 평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결심은 도전 사흘째, 손톱으로 억지 쌍꺼풀을 만들고 나타난 7살짜리 딸 앞에서 무너졌다. “아빠, 난 왜 쌍꺼풀이 없는 거야.”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딸에게 위로랍시고 한 말이 “요즘은 외꺼풀 미인이 대세야”라는 거였다. 도로 외모 평가다. 그나저나 7살짜리 딸도 쌍꺼풀 유무로 미추를 가르다니, 외모에 대한 과한 관심으로 인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방법이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 그놈의 다이어트가 뭔지 직장인 나아무개(26·여)씨는 도전 첫날부터 외모에 관한 얘길 하고 말았다. 그는 점심 밥상을 앞에 두고 주로 ‘다이어트’를 소재로 얘길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야식을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동료에게 “그런데 (얼굴이) 하나도 안 부으셨어요” 위로를 하거나, ‘다이어트에 실패했다’는 동료에게 “지금도 날씬하다”며 용기를 주는 식이다. 늘 하는 얘기가 다이어트 얘긴데, 그런 말까지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도전 기간 동안, 한번은 다이어트 중이라는 선배에게 “자장면은 고칼로리인데…”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선배는 저녁을 먹는 대신 계란과 바나나로 저녁을 때웠다. 공연히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놈의 다이어트가 뭔지….’ 나씨는 ‘살찌는 게 언제부터 해서는 안 될 일이 된 건가’ 되묻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꿈쩍않는 ‘외모 지상주의’
▶‘외모사회’를 넘어…일주일간 ‘외모’ 말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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