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첫 사과 148일만에 수사 수용
“조사 수용” 약속 번번이 뒤집어
헌재심리도 ‘불공정’ 빌미 불출석
탄핵뒤 민간이 돼서야 “성실 조사”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직을 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집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검찰과 특검에서 ‘조사 수용’과 ‘거부’를 반복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드디어 검찰에 출석한다. 지난해 10월25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지 148일째 되는 날이다. 재직 중에는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민간인이 돼서야 검찰 조사에 응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2차 대국민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혔다. 그러나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 세 차례 대면조사를 요청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의 발표는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며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2월9일 박 전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추진하자, 박 전 대통령 쪽은 언론 유출, 녹음·녹화 등을 꼬투리 잡아 거부했다. 유 변호사는 ‘중립적인 특검’이라는 기존의 말을 바꾸고 “특검 수사는 수사 목표를 정해놓고 진행한 짜맞추기 수사”라고 비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출석을 저울질하다 헌재가 불공정하다며 불출석하겠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헌재의 지난 10일 파면 결정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를 두고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검찰 조사)도 지키지 않아 헌법 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협조 등 상황을 바로잡거나 반성할 기회를 놓치면서 탄핵과 범죄 피의자가 되는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민간인이 된 뒤에야 입장을 바꿨다. 지난 15일 특별수사본부가 박 전 대통령의 소환 날짜를 통보하자, 박 전 대통령 쪽은 “검찰이 요구한 일시에 출석하여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 검찰 수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실체적 진실이 신속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의 형사불소추 특권이 사라져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처벌이 가시화되자 현실을 받아들이고 선처를 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파면된 상황에서 구속이라도 면하려고 태도를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