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31일 오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차량을 타고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 담긴 범죄 사실은 무려 18가지로,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사안들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박 전 대통령이 이젠 592억원의 뇌물 혐의 ‘피고인’으로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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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70억·에스케이 89억 추가지원 요구 검찰이 이날 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며 새롭게 추가한 내용을 보면, 케이스포츠재단을 통해 롯데그룹에서 70억원을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와 에스케이그룹에 89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혐의(제3자 뇌물요구) 등이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뇌물액수는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 파악됐던 삼성 돈 433억원에서 592억원으로 훌쩍 늘었다. 검찰은 이번에 추가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40년 지기’ 최순실씨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기업의 청탁을 받고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롯데와 에스케이 모두 면세점 재선정 과정에서 탈락하는 악재를 겪었고, 박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기업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최씨가 운영하는 케이스포츠재단에 돈 지원을 요구했다고 본 것이다.
앞서 특검이 시작되기 전인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 때 검찰은 롯데의 70억원이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해 박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날 롯데의 70억 추가 출연이 기존 혐의와 함께 제3자 뇌물수수죄도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삼성이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출연한 16억2800만원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제3자 뇌물수수를 모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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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 담긴 범죄 사실 18개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총 18가지로, 큰 틀에서 보면 지난달 27일 구속영장 청구 당시와 비슷하다. 이날 검찰이 박 전 대통령 공소장에 담은 범죄 사실을 보면 대통령으로서 심각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들이 나열돼 있다. 대기업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뜯어냈고,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등을 작성한 뒤 정치적으로 자신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지원금’을 통해 통제하려 했다. 사상의 자유를 옥죄는 심각한 헌법 위반 행위인 셈이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지원배제 지시에 소극적인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공무원들을 사직하게 하는 등 무엇보다 신중하게 행사해야 할 인사권을 사적으로 남용하기도 했다.
18개 범죄 혐의 중에 기업들을 상대로 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나 강요는 무려 9가지에 달했다. 현대자동차에 최순실씨가 운영하는 ‘플레이그라운드’에 71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케이티(KT)에도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했다. 삼성, 롯데, 에스케이 등 대기업들이 최씨 소유 회사에 돈을 주도록 하는 등 뇌물수수 관련 범죄 사실도 다섯 개에 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한테서 승마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했던 하나은행 지점장을 승진시켜달라고 은행장에게 요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최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별 은행의 세부 인사까지 개입하는 등 대통령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깨알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