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단지 학습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여러 예술·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혹시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학교는 이들을 강사로, 돌봄전담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조리원으로 다루고 세상은 이들을 ‘아줌마’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받는 차별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의 실제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현장 취재 내용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한겨레>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기획으로 이철 작가가 본 학교 현장을 매주 한 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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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돕고 아이의 관계까지 마음 쓰는 사람
통학버스가 학생을 내린 지 이미 오래다. 모두 제 교실을 찾아갔지만 정호(가명)는 건물 밖에 남았다. 오늘따라 바람이 부드럽다. 아이는 그게 좋다. 바람이 아이의 볼을 쓸어주고 있는 게다. 김경애씨는 곁에 앉아 이 아이가 느끼고 있을 기분을 그려본다. 두 번째 수업 종이 울린다. 김경애씨는 아이가 마음을 돌리길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좋으면 그게 좋아서 계속 있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아이를 다독여서 올라가겠다고 하죠. 어떨 땐 3~4교시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요.”
김경애씨는 특수교육실무원 5년 차다. 지난해부터 특수학교에서 일한다.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을 돕다가 전보를 왔다.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하지만, 학교에선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아이가 언제 어디로 달려갈지 모를 일이다. 마음을 끄는 게 있어 아이가 달리면, 김경애씨도 뛰어야 한다.
이제 비장애·장애학생 함께하는 통합교육 방향
장애학생은 원래 소속된 반과 특수학급 오간다
‘특수교육 동선’을 책임지는 이름, 특수교육실무원
아이 때문에 다치기도 한다, 아이 잘못도 아닌데
학교는 ‘가입한 보험 없냐’ ‘학부모와 해결하라’
교사는 연금공단이 있지만 실무원은 개인 처리
그래도 고충 말하기 어렵다, 아이 일이기도 하니까
하루 첫 일과는 아이를 맞는 일이다. 통학버스가 들어오면 담임교사와 함께 아이들을 챙긴다.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 정서·행동 장애 아이들이다. 다섯 명 남짓 아이가 한 반이다. 교실로 가는 길에 한 아이가 멈추거나 자리에 주저앉으면 김경애씨가 남는다. 아이에 따라 이유는 다양하다. 마음을 돌리는 방법 또한 아이마다 다르다.
학생이 모두 자리를 잡으면 교사가 시간표를 알려주는 것으로 하루 수업을 시작한다. 교사는 수업을 이끌고 특수교육실무원은 아이의 학습을 돕는다. 김경애씨의 자리는 항상 아이 옆이다. 아이가 글자 쓰는 걸 힘들어하면 연필 잡은 손을 붙잡고 같이 써 준다. 제 이름도 쓰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힘이 좋은 아이를 도울 땐 두 손으로 잡아도 힘에 겹다.
특수교육실무원은 장애학생의 학습, 교내외 활동, 등하교, 급식, 용변 처리 등을 돕는다. 또래와 어울릴 수 있도록 아이 주변을 신경 쓰기도 한다. 아이의 건강과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주요한 업무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를 보듬는 것도 특수교육실무원의 역할 중 하나다. 먹고 공부하고 이동하는 일부터 아이의 관계를 신경 쓰고 마음을 돌보는 일까지, 특수교육실무원의 일은 아이와 밀착돼 있다.
2017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8천여 명의 특수교육실무원이 특수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된 현장도 많은데, 이들 수까지 더하면 1만1000여 명 규모다. 특수교육 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포함해 1만9000여 명, 장애학생 수는 8만9000여 명이다.
중도중복학생이 휠체어나 침대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이동용 리프트(왼쪽)와 학교비치용 휠체어가 교실 한 켠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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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교육에서 통합교육으로, 특수교육실무원이 필요한 이유
김원실씨가 초등학생 아이들과 교실 바닥에 둘러앉아 공기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4단까지 한숨에 끝냈다. 아이들은 이럴 줄 몰랐다며 난리다. 이건 사기라고 외치는 아이도 있다. 이제 꺾기가 남았다. 다섯 개의 공기알을 던져 손등에 올린 뒤, 그것을 다시 띄워 되잡아야 한다. 수진(가명)이는 기분이 좋다. 자신을 돌보는 실무원 선생님이 오늘따라 대단해 보인다. 왁자지껄한 또래 아이들의 기운도 즐겁다.
“원반에 가면 원반 선생님하고도 잘 지내야 해요. 원반 아이들 이름도 빨리 외워야 하고요. 우리 아이가 거기서 아이들하고 지내야 하니까 우리 아이를 이해시키는 것도 저희 역할이에요. 이 아이가 왜 그래요? 물어보면 우리가 답해야 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 친구인지 말해줘야 하는 거죠.”
김원실씨는 2012년에 특수교육실무원이 됐다. 2년 전까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중학교에서 일한다. 모두 일반학교다. 이제는 일반학교도 장애학생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통합하는 게 교육정책의 큰 틀이 됐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은 원반과 특수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다. 원반은 원래 소속된 반이란 뜻이다. 비장애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고 해서 통합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학교에서 운영하는 특수교육은 협력학급 방식이 일반적이다. 원반과 특수학급을 별도로 두고 특정 교과목 시간에만 부분적으로 분리해서 수업을 듣게 하는 방식이다.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은 특수학급에서 수준에 맞게 공부한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체험 위주의 과목은 원반에서 비장애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통합교육의 한 유형에 속한다. 통합교육은 간단히 설명하면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교육 공간을 분리하지 않는 걸 말한다.
특수학급을 운영하는 일반학교는 초·중·고 7000여 곳이다. 전체 학급수는 9500여 개, 해당 학급 학생 수는 4만4000여 명이다. 전일제 통합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도 상당하다. 장애학생이 모든 수업을 통합반에서 듣는 경우다. 6200여 곳, 1만3000여 학급, 해당 학급 학생 수는 1만3800여 명이다. 통합교육의 개념은 언어와 민족, 인종과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나 문화적 차이 등 모든 차별적 요소를 극복하는 데까지 확대된다.
1960년대까지 특수교육의 방향은 장애학생을 비장애학생과 분리해 교육하는 데 있었다. 통합교육은 1971년 대구 칠성국민학교에 특수학급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30명의 학생 규모였다. 통합교육이 본격화된 건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다. 개정 내용에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자를 교육하는 문제, 특수교육에 필요한 교재 교구 등을 마련하는 것, 별도의 화장실이나 경사로 등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설치 등이 포함된 것이다.
수진이(가명)가 원반에 갈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모두를 수진이에게 인사하게 한다. 수줍어하는 아이도 있고, 귀찮은 아이도 있다. 반가워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인사하는 법은 천차만별이다. 수진이에게 새롭게 궁금해진 일을 묻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사람마다 지닌 차이를 이해하는 일에 빠르다. 김경애씨는 담임선생님이 고맙고 아이들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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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중복반’의 경험, 아이들은 차이를 빨리 이해한다
아이의 숨소리가 끓기 시작했다. 아이는 호흡 장애로 기관을 절개했다. 목에 기관 튜브가 삽입돼 있어 때가 되면 가래를 빼주어야 한다. 안혜자씨는 아이의 가래 흡인을 담당하는 활동 보조원에게 상황을 전했다. 석션이 끝나자 아이의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아이는 뇌병변 장애 정도가 심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안혜자씨는 학교에 근무한 지 9년 됐다. 지금은 중도중복반에서 아이를 돌본다. 장애의 정도가 무겁고 여러 장애를 중복으로 지닌 아이가 속한 반을 이렇게 부른다. 대개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다. 석션을 하고 아이의 상태를 보여주는 기계를 점검하는 일은 별도의 인원이 맡고 있다. 기저귀를 갈거나 음식을 먹이는 일은 안혜자씨의 일이다.
아이는 골다공증도 갖고 있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뼈도 약해졌다. 아이를 처음 만나고 3~4개월은 기저귀를 가는 게 겁이 났다. 잘못해서 뼈가 부러질까 두려웠다. 그 기간 동안 담당 교사가 기저귀 가는 일을 도맡아줬다. 석션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무서웠다. 안혜자씨는 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했다. 장애인을 돌본 경력이 10년을 넘지만 이런 아이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중도중복반에 처음 왔을 때 굉장히 심란했어요. 솔직히 일반학교에 이런 반을 만든 이유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아이가 눈짓으로 표현을 해요. 항상 물어봐야 해요. 말을 못해도 최소한 서너 가지 연필을 집고 빨간색? 주황색? 물어봐요.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분홍색인데, 분홍색? 하면 눈으로 좋다는 의사를 표현해요. 아니다 싶으면 눈을 올리고.”
원반 수업을 올라갈 때면 석션 담당과 안혜자씨가 따라간다. 수업 도중 석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안혜자씨는 이런 상황이 원반 교사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장애 어린 학생들은 이 아이를 받아들였다. 친구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도가 무겁든 가볍든 통합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지난 2015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대전지부 조합원들이 ‘특수교육실무원의 배치기준’에 항의하는 모습이다.
“아이들을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오만가지 정이 다 들어요. 이 아이 때문에 웃을 때가 있고, 또 화가 날 때도 있고. 막 왔다갔다 해요. 이 일이 힘들다고 하는데 아이들하고 관계는 다 감수해요. 다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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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탓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특수교육실무원 제도는 2000년 인천에서 3개월간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실업여성 고용창출을 위한 장애아동 공익보조원 지원사업’이라는 명칭이었다. 특수교사에겐 혼자 여러 명의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개별화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있었다. 일반학급에선 장애학생의 학습, 학급 활동, 교실 생활 적응을 도울 사람이 절실했다. 이후 정부는 2004년 ‘특수교육보조원 제도’라는 이름의 정책을 추진하고, 그해 전국 특수교육현장에 2000명의 특수교육실무원을 배치한다.
처음엔 특수교육 보조원으로 불렸다. 지금은 지역별로 특수교육실무사, 특수교육지도사, 특수교육실무원 등으로 불리고 있다. 교육부는 특수교육 보조 인력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실무원들은 특수교육지도사로 명칭을 공식화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학생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특정행동을 유도하고 지도하는 게 이들이 담당하는 일을 잘 드러내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권감수성 절실해도 체계적 교육은 없다
교사는 방학중 연수, 실무원은 방중 비근무자
통합교육 기조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우리 모두’에 특수교육실무원도 들어 있을까
특수교육실무원의 역할은 특수교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이라지만 둘의 업무 영역이 같을 경우가 있다. 수업이나 평가, 상담은 교사의 고유 업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학생을 돌보는 데 필요한 여러 일에서 역할 영역이 겹친다. 예를 들어, 장애학생의 용변을 치우는 일을 교사가 수행하면 신변 처치 지도가 된다. 같은 일을 실무원이 하면 신변 처치 지도 보조, 혹은 용변 처치가 된다. 특수교사와 실무원은 파트너쉽이 필요한 관계지만,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4년 11월 교육공무직본부는 특수교육실무원을 대상으로 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의 일과 노동환경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실무원을 할퀴고 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실무원이 말할 때 아이는 그 떨리는 목청이 좋아 실무원의 목을 덥석 집어 잡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실무원은 아이가 밀어 계단을 구른 적도 있었다. 아이가 던진 식판에 맞아 눈 밑이 함몰된 사례도 있었다. 정서 장애를 지닌 아이가 있을 땐 특수교사와 실무원은 날카로운 물건부터 치웠다.
아이들 탓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다치면 학교는 학부모와 해결하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이 없냐고 되묻기도 했다. 교사는 연금공단에 신청하면 비록 공상처리로라도 보상받을 수 있지만, 실무원은 개인적으로 산재 처리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실무원의 일은 아이와 밀착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들이 겪은 사고와 고충은 그런 조건을 드러내야 설명 가능했다.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실무원의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 아이의 용변을 돕는 사진을 사용한 것이다. 토론회에 와있던 학부모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많은 학부모가 이 일을 알게 됐다. 아이들의 학부모는 아이를 위험한 존재로 묘사한다고 여겼다.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장애학생의 인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며 학부모들에게 사과했지만, 학부모에게 실무원은 장애학생의 인권을 고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돼버렸다. 이날 이후 실무원들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게 자신이 돌보는 아이의 일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여러 관계와 얽혀 있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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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예쁜데도 ‘경계’할 때가 있다
유독 예쁜 아이가 있다. 같이 지내다 보면 예쁜 아이가 생긴다. 몸을 뒤틀고 팔을 휘젓는 것으로 제 불만을 드러내는 아이인데 그렇다. 중도중복반 아이들은 말을 전혀 안 하지만, 눈짓으로라도 제 뜻을 드러내면 그 아이와 관계 형성(라포르 형성)이 이뤄진다. 안혜자씨는 이 아이가 중학교에 갈 때 따라가야겠단 마음을 먹고 있다. 그렇게 예뻐서, 눈이 참 예쁘다 싶어 보고 있으면 그 순간에 확, 할퀴거나 목을 조르기도 한다. 특수교사도 겪는 일이다.
“어느 날은 제가 교사 선생님을 잡고 울었어요. 선생님, 내가 이렇게 예쁘고 그런 애를, 얘가 다가오면 내가 피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퍼요, 내가 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면서.”
아이를 돌보다가 문득, 아이가 예쁘다는 느낌과 아이를 경계하는 반응이 내 마음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감정은 소진된다. 고충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특수교사도, 학부모도 아이와 함께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그래도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니 마음을 다잡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할 거 같다.
교사에게 제공되는 여러 연수 프로그램에도 눈길이 간다. 중도중복반처럼 새로운 유형의 장애학생이 학교로 들어오는데, 교육은 기초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언제 호흡이 멎을지 모를 아이를 돌보는 실무원도 있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라도 큰 불상사가 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둔다는 건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불행히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이런 생각에서 오는 극심한 긴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학교는 귀띔조차 없다.
장애학생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장애의 정도는 무거워지는 상황에 학교도 어려워하고 있다. 석션을 해야 하는 학생은 들어왔는데 학교는 석션을 의료행위로 놔둘지, 교육행위에 포함할지 판단을 미루고 있다. 전체 학생 수는 줄고 있다는데 장애학생 수는 매해 늘고 있다. 통합교육이라는 방향이 제 틀을 갖춘 덕에, 집과 병원에 있던 아이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2007년 장애 학생 수는 6만5940명이었다. 10년이 흐른 2017년 장애 학생 수는 8만9353명이 됐다.
인권 교육도 절실하다. 학교 내 다른 비정규직 직종과 달리, 학생과 밀착해 그들을 돌보는 일이 특수교육실무원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직종보다 인권 감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체계적 교육은 없다. 교사들처럼 방학 중에 연수를 받는 일은 언급조차 어렵다. 이들은 방중 비근무자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이들이 아이에 밀착해 그들을 몸과 마음마저 돌보고 있는데, 교육부는 그저 이들을 보조 인력으로만 여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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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우리의 인권을 고민할까요?
“엄마 아빠가 다 일해서 다른 집보다 상대적으로 돌봄을 많이 못 받는 아이가 있어요. 그럼 저희가 빨래도 하고 샤워도 시키고 그래요. 몸은 다 큰 남자애를 샤워시키기도 해요. 우리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는 거잖아요.”
김원실씨는 학교가 장애학생의 인권뿐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특수교육실무원의 인권도 고려할 줄 아는 기관이 되길 바란다. 올해 교육부는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통합교육이라는 방향에 맞춰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기조를 내세웠다. 김원실씨는 ‘우리 모두’에 특수교육실무원이 배제된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현장에서 실무원은 ‘모든 아이’를 곁에서 돌보고 있지만 이들의 고충은 세상이 다뤄주질 않는다.
김경애씨의 손톱은 알록달록하다. 주기적으로 손톱을 관리한다. 손톱마다 색색으로 꾸민다. 김경애씨가 돌보는 아이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손톱을 만지고 누르는 버릇이 있다. 아이가 자꾸 손톱을 누르다 보니 손톱이 깨지고 상하는 일이 많아 관리를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빨강 노랑 초록 손톱이 신기하다. 아이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아이는 김경애씨의 손톱을 만져보고 살펴보는 게 즐겁다.
이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