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새벽 0시36분. 경기도 용인시 영동고속도로에서 벤츠 차량 한 대가 역주행하다 택시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택시 기사 조아무개(54)씨는 중태에 빠졌고 뒷자리에 탄 승객 김아무개(38)씨는 숨졌다. 무모한 역주행의 원인은 음주운전이었다. 사고를 낸 노아무개(27)씨는 술을 마시고 고속도로에 진입해 운전하다가 느닷없이 유턴해 7㎞를 달리다가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씨는 경기 이천시의 한 대기업 직원으로 외근을 마치고 회사 근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그의 가족은 멀리 경남 창원시에 머물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택시기사 조씨는 사고 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 노씨는 골반과 팔 골절로 전치 8주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용인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노씨가 입원해 있어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병원에서 면담 조사했을 때에는 유턴 이유 등에 대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이 빚은 비극의 원인을 기억조차 못 하는 셈이다. “사고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가해자 노씨의 말이 알려진 뒤 음주운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제발 음주법 좀 강화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음주운전을 비롯해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를 가중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이 청원에는 5일 현재 2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비극적 사연은 잊힐 만하면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음주운전 사고는 2013년 2만6589건에서 2017년 1만9517건으로 해마다 2만여건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수도 2013년 727명, 2017년 439명에 이른다. 사고 빈도와 사망자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50건 이상 사고가 터지고 하루 1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의 상습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도로교통공단 집계 결과, 음주단속 시 총 3차례 이상 음주운전을 했던 상습 적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4.6%에서 2016년 19.3%로 오히려 늘었다. 음주운전을 한 뒤 그다음 단속에 걸리는 시간도 횟수가 거듭될수록 짧아진다. 2012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5년6개월 동안 면허를 취득한 운전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음주운전자가 첫 단속에 적발될 때까지는 평균 649일이 걸렸다. 하지만 두 번째 적발 때까지는 536일, 세 번째 적발 때까지는 419일이 걸렸다. 네 번 이상 적발에는 평균 12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주운전이 ‘습관’이라는 뜻이다. 송수연 도로교통공단 연구원은 “상습 음주운전자가 음주운전 사고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차례 이상 음주단속에 적발된 운전자를 상대로 한 관리계획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과속운전 역시 ‘습관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로교통공단 분석 결과를 보면, 과속 운전자가 면허 취득 뒤 처음 과속으로 적발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615일이었다. 하지만 열 번째 위반을 한 운전자는 앞선 단속 이후 평균 80일 만에 과속으로 다시 적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송 연구원은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큰 음주운전과 과속운전 모두 상습성이 높다는 특성이 있다”며 “이들에게 좀 더 확실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관련 법과 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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