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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스쿨존에서도 보행자가 피해야 하나요”

등록 2018-06-14 04:59수정 2018-06-14 11:29

소소하지만 확실한 안전
③ 사람 중심의 교통안전 문화

과속방지턱도, 인도도 없는 길
부주의 운전에 아들 잃은 배씨
“스쿨존 안전 강화” 청와대 청원

보행자 사망 OECD 갑절 수준
“교통정책, 사람 중심 전환해야”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아직도 꿈인가 싶어요.”

전화기 너머 들려온 배인문(47)씨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1년이 다 되도록 슬픔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배씨의 열 살배기 막내아들은 지난해 6월15일 오후 3시26분, 충북 청주시 옥산면의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시내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배씨가 마지막으로 아이와 살 비비며 인사를 나눈 것은 일요일이었던 지난해 6월11일이었다. 주 중에는 직장이 있는 충북 충주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일요일 오후 아이와 아쉬운 작별을 한 터였다. 그리고 나흘 뒤 아들이 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카이스트를 가고 싶다고 했죠. 아빠가 퀴즈 내면 맞추는 걸 좋아했고….”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아이의 꿈을 말할 때 배씨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밝아졌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직장 때문에 집을 오래 비우곤 했어요. 좀 더 놀아주고 보듬어 주고 안아줬어야 했는데….” 그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당시 버스 운전사 ㄱ씨는 배씨의 아들을 친 뒤에도 1시간 가까이 운행을 계속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사고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사고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버스의 블랙박스에는 영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기기 고장 등으로 파악했지만, 어쨌든 그날의 진실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스쿨존의 안전시설이 더 잘 되어있었다면’, 또 ‘운전자가 좀 더 조심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점이다.

배씨는 “사고 지역이 말만 스쿨존이었지 과속방지턱도 없었고, 심지어 인도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대체 스쿨존에서 왜 빠르게 달리는지 모르겠다. 버스를 천천히 운행했더라면 아들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 아들의 첫 기일을 맞는 배씨는 지난 12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스쿨존 구간의 안전시설 설치 및 공용버스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배씨는 자신과 막내아들에게 왔던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뭐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보행자 사고가 유독 잦은 편이다. 도로교통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4185명)의 40%(1675명)가 보행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19.2%)의 두 배가 넘는다. 오주석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차량 소통 중심의 교통정책을 펴온 탓에 보행자의 권리나 안전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피해는 위험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와 노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아동 보행자 사망자 수는 0.52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0.32명을 크게 웃돈다. 노인 보행자 사망자 수는 더 심각하다. 인구 10만명당 12.8명으로 오이시디 평균의 4배가 훌쩍 넘는다.

전문가들은 교통정책에서부터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오 연구원은 “현재 도로교통법상 별다른 규제가 없는 도로는 규정 속도가 시속 60㎞에 이른다”며 “전체적으로 규정 속도를 낮추고, 보행자 사고 가능성이 큰 이면도로 등에서는 30㎞ 수준의 주의 운전을 강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자 보호를 위해 신호등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교통사고 사건을 많이 다루는 한 변호사는 “운전자들이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지나려다가 보행자를 치는 사례가 많다. 보행 신호등처럼 차량 신호등에도 남은 신호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보행자 사고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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