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현 기초과학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 산학협력단(이하 산단)이 2012~2014년께 각종 내부규정을 위반해가며 민간기업 툴젠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를 이전한 사실이 서울대 감사 결과 밝혀졌다.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에게 세금 수십억원을 지원해 ‘노벨상급’ 특허가 나왔지만, 관리 부실로 김 교수가 최대주주인 툴젠만 배를 불린 모양새다. <한겨레21>이 지난해 9월부터 추적 보도하고 있는 김 교수의 ‘유전자가위 기술 특허 부당이전’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서울대로부터 ‘특정감사 결과 처분요구서’(이하 감사보고서)와 ‘김진수 교수의 연구성과와 제3자 명의 특허의 연관성 분석 및 자문용역’ 최종보고서(이하 용역보고서)를 제출받아 10일 <한겨레21>을 통해 공개했다. 감사보고서는 <한겨레21>의 의혹 제기 이후 서울대 상근감사실이 산단을 감사해 지난해 12월께 만든 자료이며, 용역보고서는 비슷한 시기 산단이 법무법인 태평양에 의뢰해 같은해 12월18일 받은 자료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크리스퍼 특허 관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서울대 산단이 지적받은 사항은 △직무발명 관련 업무 처리 부적정 △위원회 운영 부적정 △기술이전 업무 처리 부적정 △민원 처리 및 대응 조처 지연 등이다. 산단은 툴젠이 계약 없이 일부 특허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그동안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감사보고서를 보조하는 구실인 용역보고서는 해당 특허에 대해 “툴젠이 단독명의로 특허를 출원한 것은 위법하다”며 특허등록무효심판 등 민사·형사·행정적 조처를 안내했다.
크리스퍼는 유전 정보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유전자변형생물 개발, 난치병 치료 등에 이용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2017년 시장조사기관 엔케이우드는 크리스퍼 시장 규모가 연평균 36%씩 성장해 2025년에 59억6600만달러(약 6조7833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2년 김 교수가 이끌던 연구진도 크리스퍼 개발에 성공했다. 김 교수 팀은 크리스퍼를 만드는 과정에서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았고 서울대 시설과 인력을 활용했다. 특허 소유권은 서울대 산단에 있고, 법과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쳐 특허를 기업에 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보고서를 보면 “특허심의위원회 및 사업화전략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아 규정과 심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처리돼야 할 지식재산권 관리 업무의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등 산단의 특허 이전 과정은 엉망진창이었다.
세계적인 특허에 대한 가치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크리스퍼 기술을 ‘가출원’(임시 등록) 특허 3개로 나눠 출원했다. 서울대 산단은 2012년 11월20일 첫번째 가출원 특허(P1)를 370만원에 툴젠으로 이전했다(다른 특허 3개와 묶어 총 1852만5천원). 두번째 가출원 특허(P2)는 2014년 3월12일 2천만원 및 경상기술료 3%에 이전됐고, 세번째 가출원 특허(P3)는 아무런 계약 없이 넘어갔다. 툴젠은 P1, P2, P3를 바탕으로 세계 11개 나라에 22개의 정식 특허를 출원했다. 전직 서울대 산단 직원은 “장기 비활용 특허도 500만원인데 서울대에서 손꼽히는 기술이 370만원, 2천만원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용역보고서는 P1, P2, P3 모두 “정부연구과제에 의해 이뤄진 직무발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계약 과정의 미스터리도 있다. 당시 바이오 분야 전문위원이 따로 있는데도 재료 분야 전문위원 조아무개씨가 P1, P2의 계약을 맡았다. P2 계약 때는 서류상 계약일이 실제보다 한달 앞당겨져 결재권자인 부단장 공석 시기로 조작됐고, 해당 전문위원이 전결로 처리했다. 감사보고서는 “명백하게 규정을 위배해 임의로 체결된 계약”이라고 지적했다.
한술 더 떠 P3는 계약도 없이 넘어갔다. 용역보고서는 “P3에 관한 권리가 툴젠에 적법하게 양도됐다고 볼 수 없을 것”이라며 P3를 바탕으로 출원된 수많은 특허에 대해서도 “툴젠이 단독명의로 특허를 출원한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용역보고서는 애초 문제가 불거진 크리스퍼 원천특허 이외에 툴젠의 특허 7건에 대해서도 추가로 민형사 소송 등 후속 조처를 검토하라고 했다. 서울대에 소유권이 있는데도 출원인에서 빠졌을 가능성 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김 전 교수가 단장으로 있던 기초과학연구원(IBS·현 수석연구위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툴젠과 공동연구로 개발한 특허 중 기초과학연구원이 출원인에서 제외된 건들에 대해 대전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김진수 전 교수는 “법률 자문 결과 크리스퍼 원천 특허와 관련해 크게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만약 서울대 감사 결과가 이와 다르다면 자세하게 해명하고 후속 절차에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라고 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최대주주로 있는 민간기업 툴젠 누리집 첫 화면. 툴젠 누리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