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진짜 열심히 할 건데, 왜 인사가 안 난 건가요.” 회사생활 5년째, 처음으로 나는 지원했지만 가지 못한 부서의 부서장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그와 그 정도의 관계는 된다고 생각했고, 그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용기를 냈다. 그해 나는 고된 부서에서 나를 갈아 넣으며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했고, 성취도 있었다. 그러나 인사발령이 나던 날, 내 이름은 내가 지원한 부서 아래 없었다. 당시 내 팀장은 “흠, 나 같으면 너를 배치할 텐데…”라고 유감을 표했다. 팀장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고, 전화한 부서장에게는 ‘무례하다’고 욕을 먹었다. 계속 원하는 부서에 가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를 두고 언제나 원하는 부서로 가던 한 선배가 말했다.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 불난 집에 아재개그까지. 그런데 무엇이 적극적인 세일즈인가. 나는 순진하게 내가 낸 성과들이 알아서 보일 거라 생각했다. 회사에 인사평가라는 제도가 있으니 말이다. 나를 갈아 넣으면서 일한 것도 알 거라 생각했다. 근태 관리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사전 물밑 작업은 없었다. 셰릴 샌드버그가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린 인’(Lean In)을 말한 건 그래서다. 많은 여성이 대부분 완벽주의와 자기비판의 양대 늪에 빠져 있다.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성과를 과소평가한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에 ‘이래도 괜찮은 건지’ 몇 번은 주저한다.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인사철이 되면 차라리 시험을 봤음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정치를 하기에 불리한 지형이다. 그의 직속 상사는 2018년 ‘미투’ 이후 ‘펜스룰’을 친단다. 부서원 모두가 약속이 있어 상사에게 “식사하러 가시죠” 했더니 상사는 “우리 둘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어하며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슬픈 일화다. 남자 동기가 거의 매일 그를 추천할 상사와 점심 커피→저녁 담배까지 함께하며 자연스러운 정치력을 발휘하는 동안 그는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적 문화의 대기업에 다니는 또 다른 친구는 지난해 말 인사평가에서 둘째 등급을 받았다. 고민고민하다 부장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은 “지난해에도 최우수여서 올해까지 그러면 연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전체를 고려하는 것도 내 일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증거로 남는 메일은 아니었다). 그와 친한 1년 선배는 몇년째 내리 최고 인사평가를 받으며 좋은 부서로만 다니는데 말이다. 왜 ‘균형’을 고려하는 건 그의 몫인가. 오늘날 일터의 기쁨과 슬픔을 다큐처럼 담아내 ‘딱 우리 회사’라며 트위터를 달궜던 소설가 장류진은 <잘 살겠습니다>에서 사내 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연봉을 공개한 날의 씁쓸함을 그려낸다. 정확히 1030만원이, 입사동기인 남편이 더 많았다. “네가 2년 동안 백오피스에 있어서 그랬나봐”라는 예비 남편의 말에 그녀는 읊조린다. “나는 왜 2년 동안 거기에 있었을까. 이력서에 빼곡했던 내 모든 경력이 전략기획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못해서 그랬나. 그런데 시켜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까.” 지난해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미국·캐나다 590개사 2200만명 설문 결과를 분석한 ‘직장 내 여성 2019’ 보고서에 따르면, 유리천장보다 ‘부러진 사다리’(broken rung)가 문제였다. 직급별 여성 비중이 신입사원 48%에서 초급 매니저 38%, 팀장급 30%로 줄었다. 저널리스트 조앤 리프먼은 직장 내 성차별의 이모저모를 다룬 <제가 투명인간인가요?>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직장 내 의사결정에 반영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능력주의 회사인 경우 더 심하단다. 공정에 대한 자기 확신이 차별을 재생산했다. 내 ‘인사 실패’의 원인을 나는 계량할 수 없다. 차라리 엑셀 시트에 더하기, 빼기로 객관화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일해볼 기회, 실패할 기회는 왜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걸까. 세련된 정치력이 없어서? ‘적재적시’에 손들지 못해서? 마침 그때 임신하고, 육아휴직을 해서? 노동에 대한 평가와 노동자의 배치에 계량화가 필요하다. 더 다양하게 도전할 기회의 분배가 필요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 회사생활에 기쁨도 많았지만, 내 커리어를 뜻대로 펼쳐보지 못해 슬픔도 많았다. 리담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