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스끼야끼, 가리, 지리, 아나고, 와사비…. 곳곳에 남은 일본어의 흔적은 음식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전골, 외상, 싱건탕, 붕장어, 고추냉이라는 우리말이 있지만 쉬 고쳐지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순한글 신문’인 <한겨레> 기자인데도 이런 용어들을 ‘순화’해야겠다는 의욕이 그다지 솟지 않는다.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일본식 외래어에도 ‘말맛’이 있다. “어제 과음했으니 대구지리 먹자”고 말하는 대신 “대구 싱건탕 먹자”고 발음할 때 말맛이 다르다. 자음과 모음이 주는 어감도 다를뿐더러, 뭔가 전문용어를 쓰는 듯한 쾌감이 있다. 게다가 도꼬다이, 우라까이 등 누구보다 일본식 외래어를 많이 쓰는 기자들은 순화를 주장할 자격이 더욱 없다.
그런 궤변은 집어치우라는 사람들에게는 “일본어 순화운동에 섞인 저열한 민족주의가 싫다”고 답할 수도 있다. 한국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이라크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여기며 말 한마디마다 영어 단어를 두세개씩 섞어 쓰는 한국 사람들이 유독 일본어 순화운동에만 흥분하는 모습은 우습다. 내가 속한 76년생 세대에게 일본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똑같은 외국일 뿐. ‘반일’은 가장 부담 없이 ‘정치적 올바름’의 상징으로 남용되지만, 사실 그 안은 내용 없이 텅 비어 있다.
주방용품 업계에서 국자를 ‘샤꾸’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서도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다. 원래 발음은 ‘히샤꾸’다. 영업용으로는 ‘통샤꾸’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주방용품 판매업체 쿡프라자는 설명한다. 쿡프라자는 거대한 군용 국자도 납품한다. 50㎝ 길이에 한번에 1ℓ를 뜬다. 참고로 군인들이 밥 할 때 쓰는 ‘자루삽’은 4만5800원에 판매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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