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급의 쟁반자장
[매거진 Esc] 배달의 기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한 철학자도 있었고, ‘도전과 응전’이라고 한 역사가도 있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동물농장>을 쓴 작가 조지 오웰에게 역사는 ‘음식의 역사’였다. 잠시 그의 말을 길게 인용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섭생의 변화가 왕조, 심지어 종교의 변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 그런데도 음식의 중요성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는 건 희한한 노릇이다. 정치인과 시인과 주교의 동상은 곳곳에 서 있는 반면, 요리사나 베이컨 숙성 전문가, 채소 재배 농부의 동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이 말에 조금이라도 동의한다면, 잠시 중국음식점 주방장들을 위해 묵념을 해도 좋다. 지난 7일 시켜 먹은 쟁반자장은 일반 자장보다 춘장이 걸쭉했다. 해물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쟁반자장의 맛은 역시 고소한 춘장과 쫀득한 면발에 있다. 이같은 쟁반자장의 맛에 쟁반자장의 ‘기원’이 숨어 있다.
마포구 공덕동 <남선반점>의 백남선 주방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쟁반자장은 중국음식점 요리사들이 급하게 허기를 때우기 위해 만들어 먹던 데서 태어났다. 백씨는 14살부터 주방에서 일했다. 그는 “쟁반자장은 손님이 주문한 간자장을 만든 뒤 요리사들이 프라이팬에 남은 춘장과 함께 면을 대충 넣고 볶은 데서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23살 되던 80년대 초반 쟁반자장을 처음 먹었다. 쟁반자장 소스가 물기 없이 더 걸쭉한 이유는 이처럼 한번 볶은 춘장을 센 불에 한번 더 볶기 때문이라는 것. 비린내가 나기 쉬워 잘 비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쟁반자장은 노동 계급의 음식이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