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최고로 황당한 일은 ‘음식점 주인 부부가 싸우고 있는 동안 식당 안에서 혼자 라면 먹기’라고 단연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조그만 벤처기업에 몸담고 있었는데 본사가 대덕에 있는 관계로 서울과 대전을 자주 왕래했습니다. 대덕에 일이 있어 아침에 대전으로 내려가던 날이었습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조금 전이었습니다. 간단히 요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손님은 저 혼자였고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분은 식당 바닥에서 채소를 다듬고 계셨고 주인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떡라면을 주문하고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도마에 칼을 내려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채소를 다듬는 소리가 아니라 커다란 분노(?)를 가지고 칼을 패대기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무관심해지려고 신문에 얼굴을 처박고는 계속 기사를 읽고 있었죠. 그때였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며 주인아주머니에게 포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이것 봐라! 내가 이래서 밤에 채소를 다듬어 놓아야 한다구 그랬다 안카나!” 그 큰 소리에 저는 딸꾹질이 날 정도로 놀랐는데 아주머니는 태극전사의 딸답게 용맹하게 대드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큰 소리로) “그럼 당신이 좀 하지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당신이 밤에 술 마시는 동안 나는 집안일하고 있었어!”
그러자 주인아저씨가 들고 있던 식칼을 도마위로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라꼬? 이 여편네가 어디서 말대꾸야!” 주인아저씨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식칼을 들고는 주방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프라이팬을 들고는 다가오는 적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가는 신상에 좋지 못할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조용히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순간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뒤로 확 돌아서더니 식칼로 저를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아니? 물 올려놓았는데 어디를 가는 거요?” 저는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네? 아! 저… 저, 화장실이요…” “화장실 가는데 웬 가방이요? 가방 내려놔요!”
저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 명령에 따랐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죠. 자리에 앉으니 주인아저씨는 식칼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라면과 떡을 냄비에 집어넣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 양반이 이제 좀 이성이 돌아오나 보다’라고 말이죠. 그러나 그 생각이 미처 끝나기 전에 주인아저씨는 방심하여 자세를 흐트리던 주인아주머니에게 비호처럼 달려들더니 목을 조르며 주방 안으로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바닥에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도 주인아저씨는 프로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를 내리 누르는 와중에서도 뒤를 돌아보며 제가 또 도망갈까 봐 자리에 앉으라는 듯 턱을 까딱거렸습니다.
결국 주인아주머니의 신세 한탄하는 소리와 함께 주인아저씨는 저를 보자 갑자기 생각난 듯 냄비를 쳐다보았습니다. 냄비를 보는 순간! 이스트를 넣은 빵이 부풀어 오르듯 냄비 위로 허연 면발들이 산을 이루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던진 한마디. “손님! 아까 우동 시켰었소?” 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떡라면 시켰는데요.”
주인아저씨는 제가 울고 싶은 심정인 것도 모르고 돌아서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따, 그놈의 떡 한번 크다!” 저는 그 떡라면을 무려 30분 동안 먹고 또 먹었습니다. 30분 뒤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일어나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아저씨께서 저에게 하는 말이 치명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양이 많아 곱빼기 값은 받아야 하는데 그냥 서비스로 3000원만 받을 테니 그런 줄 아이소!” 지금도 제 귀에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음식점을 나오며 들었던 주인아저씨의 “또! 오이소!”라는 인사말이 환청처럼 들립니다. 그날의 일은 초여름의 ‘납량특집’이었으니까요.
김준래/서울시 강동구 명일1동

도마칼이 난무하는 식당에서 ‘무서운 식사’를 경험했다. 한겨레
김준래/서울시 강동구 명일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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