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 지역의 구멍가게에 라면에 얽힌 추억이 숨어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서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달동네였던, 지금은 재건축 아파트가 늘어선 곳이 나의 어릴 적 고향이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나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내가 살던 달동네에서 우리 집은 조그만 가게를 했다. 그래서 나의 어릴 적 별명은 ‘구멍가게집 손녀딸’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우리 집 화장실이 푸세식인 것도, 구멍가게가 너무 작은 것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소풍이나 학예회 때 부모님을 대신해서 외할머니가 와주시는 것도 말이다.
우리 구멍가게 담 옆에는 육군부대가 있었다. 그 담 구석에 가게와 연결하는 작은 벨을 달아 놓았다. 안방에서 벨이 울리면 할머니는 냄비에 물을 올려 라면을 한 냄비 가득 끓이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그 라면 냄비를 들고 자신이 직접 만든 나무계단 위로 올라가 담 안으로 라면 냄비를 넣어주곤 하셨다. 담 안에서는 군인 아저씨가 그 라면 냄비를 받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곤 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나는 밑에서 신이 나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날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어린 손녀딸이 안타까워 머리맡에 라면상자를 가져다 놓으셨다. 라면상자 안에는 우리 구멍가게에서 파는 과자와 라면,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짜파게티가 가득했다. “진희 어린이, 크리스맛스를 추카함니다.” 맞춤법도 맞지 않고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편지도 함께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착한 일을 해서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고 하셨지만, 나는 할머니 글씨와 무엇보다도 따뜻한 할머니의 그 마음을 안다.
내가 중학교에 갈 때쯤 우리 동네는 재건축 지역이 되었다. 불평만 했던 우리 구멍가게를 철거하고 이제는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며칠을 울었다. 동네 구석구석에는 재건축을 알리는 표시들이 가득했고, 우리 가족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는 중에도 할머니는 냄비를 챙겨 오셨다.
시골에서 무작정 자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상경해서, 자식들을 키워 준 소중한 냄비니까 말이다. 이제 할아버지 곁에서 지켜보던 손녀딸은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고, 그때 군인 아저씨들을 구경하던 유치원생은 친구들이 군인 아저씨인 나이가 되었다.
군대에 가면 유난히 라면이 맛있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 찌그러지고 뚜껑도 없고 한쪽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냄비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냄비 구석구석에는 할머니의 땀과 사랑이 묻어 있으니 더없이 소중한 냄비다. 이제 방학을 했으니,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 병원에 더 자주 가야겠다.
철없는 손녀딸이 지금 와서야 효도를 하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으셨다. 소중한 것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고 하더니 말이다. 할아버지 손을 꼭 잡으면, 할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토록 아끼며 키웠던 손녀딸인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늘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우리 할아버지, 아직도 밥맛이 없다고 하면 계란 풀어 라면 끓여 주시는 우리 할머니. 혹시 모르겠다. 할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잠깐 기억이 나실는지.
나는 아직도 가끔 그곳에 가서, 아직까지 지켜주는 나무들을 보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러면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좋다. 그렇게 투정을 부렸던 푸세식 화장실도, 동네 슈퍼에 비하면 너무나 작았던 구멍가게도 그리워진다. 오늘 점심은 할머니와 함께 뚜껑 없는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
이진희/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이진희/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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