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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모델, 옷을 벗고 문화를 입다

등록 2008-10-22 20:21수정 2008-10-25 19:14

한우물 팠던 2세대 모델 김선영과 활동 영역 확장하는 3세대 모델 송경아
한우물 팠던 2세대 모델 김선영과 활동 영역 확장하는 3세대 모델 송경아
[매거진 esc] 스타일리스트 김성일과 사람들
한우물 팠던 2세대 모델 김선영과 활동 영역 확장하는 3세대 모델 송경아

“천박한 스타일이 스타일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유명한 패션지 <보그>의 전 편집장 아나 윈투어가 이렇게 말했다죠. 혹자는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옷과 머리 모양에 한정하지 말라고 까칠하게 반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윈투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네게 취향이 있느냐’는 물음이 아니었을까요? 요새 패션모델들은 이런 윈투어의 철학을 앞장서서 실천에 옮기는 것 같습니다. 주는 옷을 입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나는 이런 스타일과 문화를 추구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적극적인 존재로 말입니다. 항상 냉혹한 ‘제3자’의 글쓰기를 요구받는 기자가 독자들에게 까놓고 “소설가 김훈처럼 기사를 쓰겠다”고 말한다고 비유하면 될까요? 모델 송경아(위 사진 가운데, 오른쪽)가 진행하는 엠넷의 <아이엠어 모델>이나 <트렌드 리포트 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송씨는 <바자> 등 여러 잡지를 거쳐 세계적인 화장품 맥의 한국인 최초 모델로 무대에 서는 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세대 모델의 ‘진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가 송씨에 앞서 홍콩·파리 등에서 활약했던 모델 아카데미 에스팀의 김선영(모델명 아니타·위 사진 왼쪽) 원장을 함께 부른 이유입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김 원장이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어떤 역을 맡았는지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김성일(이하 성) : 오늘 두 명을 특별히 모신(웃음) 이유는, 패션모델이 대중의 선망 대상이었지만, 과거엔 패션 아이콘이라기보다 그저 예쁜 옷을 보여주는 사람에 불과했는데, 이젠 패션을 통해서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옷을 입는 모델이 아니라 문화의 모델이 된 거지. 두 사람은 각각 모델 2세대와 3세대 대표로 부른 거야.

김선영(이하 김) : (웃음)어머, 내가 2세대야? 싫어.

: (웃음)모델 1세대는 범위가 넓어. 김동수씨부터 최미애씨까지, 그 세대를 뭉뚱그려 1세대라 한다면 2세대부터 패션모델이 대중들한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어. 모델 박영선씨부터 시작해서 아니타가 2세대의 마지막일 거야.



(왼쪽부터) 모델 김선영,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모델 송경아
(왼쪽부터) 모델 김선영,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모델 송경아
다양한 재능 펼치는 3세대 후배들이 부러워!

모델 2세대는 패션 아이콘 역할은 아니었지만, 최초로 다양한 시도를 했어. 그게 박영선, 아니타지.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에도 출연하고 말이지. 그 뒤 신식 모델로 나온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 같은 3세대가 대한민국 모델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있고. 4세대는 선영이가 지금 가르치는 애들이라고 보면 될 거고. 지금 모델 전성기가 3세대인 거 같아. 송경아만 해도 책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패션 이외의 것들을 계속 해오고 있잖니.

: 나도 많이 시도는 했지만 그땐 (모델이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벽이 있었는데, 지금 3세대 모델에 와서는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지.

: 이제 대중이 연예인이나 배우보다 패션모델에 더 열광하는 시대가 된 거야.

: 예전 패션모델은 모델만 하는 전문적인 일이었는데 이제는 다원화된 거 같아. 패션모델을 밑바탕으로 다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굉장히 많이 열렸어. 솔직히 부러워!(웃음)

송경아(이하 송) : 하지만 모델 일에 대한 열정만 보면 선배들이 더 대단해요. 저희는 운이 좋은 거죠. 다들 패션에 관심 많은 상황에서 저희가 인기가 많지만, 언니들 발자국 따라가는 거 같아요. 선영 언니도 사실 3대 컬렉션 다 섰잖아요, 홍보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저흰 시대를 잘 탔죠.

: 그래서 사실 3세대가 더욱 잘해야 하는 게, 요새 일반인들이 스스로를 포장해서 스스로 스타가 되는 시대라 오히려 모델 3세대가 자리를 못 잡는 경우가 많아.

: 응. 3세대는 여러 분야로 퍼져 나갔지만 한편 패션모델의 전문성은 약간 떨어지는 거 같아. 2세대까지는 사실 모델 외에는 아무것도 못했거든. 오직 모델이었지. 나를 중심으로 2000년에 접어들면서 다양하게 대중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에너지가 분산이 된 거지. 모델이 대중적으로 된 건 감사한데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요새 애들을 보면서 받아.

: 그래서 열정적이고 끼 있는 일반 애들한테 (모델들이) 밀려나고 있어.

공교롭게 김성일씨가 재킷 안에 입은 옷이 노란색이고, 김 원장과 송경아씨는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 옷을 입었다. “우린 빛의 삼원색”이라는 농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점점 진지해졌다. 김 원장은 표정이 풍부했고 직선적인 어법을 구사했다. 송경아씨와 김 원장 둘 다 달변이었다.

: 나는 두 사람을 너무 좋아해. 선영이는 90년대 후반부터 화보 등 작업을 많이 했는데 경아랑은 패션쇼 무대에서만 함께했어. 내가 스타일 작업을 하면 무조건 같이 해야 하는 모델이 송경아 등 몇 명 있어. 예전 박윤수 선생님 쇼에서 내가 스타일링을 도왔는데, 경아를 1번으로 세웠어. 경아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체크 모자를 쓰고 워킹을 나왔는데 박윤수 선생님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다. 고맙다”고 내 손을 잡고 말하더라고. 그 일이 경아와 관련해서 가장 기억나. 경아는 정말 표정도 풍부하고, 지금은 피부가 많이 망가졌지만,(웃음) 피부가 책받침이었어. 모공이 안 보이고 맨들맨들했다니까! 뷰티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어.


모델 송경아
모델 송경아
“한국 모델들 순진하다”

: 제가 예쁜 얼굴이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인데, 어쩌다 뷰티를 많이 했어요. 원래 모델들이 뷰티를 싫어해요. 제가 피부가 민감한데 메이크업을 여섯 번씩 해야 하니 트러블이 생기더라고요.

: 그것도 우리 때와는 다른 거야. 우린 패션 화보만 찍었고 뷰티 사진을 안 찍었어요. 지금 연기자로 변신한 변정수씨도 뷰티는 못 찍었어요. 나중에야 많이 찍었지.(웃음) 근데 경아가 나오면서 패션모델들이 뷰티를 찍기 시작했어. 그래서 3세대 패션모델은 피부가 좋아야 해. 우리 때는 피부가 더러워도 쇼를 했었다니까.(웃음)

: 경아는 사진가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피부를 가졌어. 메이크업을 하면 백인 같은데, 생긴 거는 동양인이잖아. 그래서 인기 폭발이지. 그 덕분에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화장품 맥의 월드와이드 모델도 된 거고. 경아가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다들 성공할 거라 그랬어.

: 그땐 영어가 퍼스트 랭귀지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아까 제가 “한국 모델들 순진하다”고 말했지만, 진짜 뉴욕에선 일 끝나면 집에 와 바로 쓰러져 잤죠.

: 그때 스티븐 마이젤(세계적인 패션사진가)과 함께하려던 작업은 잘 안 됐지만, 그걸 계기로 경아가 더 나은 모델이 됐어. 뉴욕에서 있었던 시절 그림과 일기도 책으로 내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에 돌아와 토크쇼 진행하면서 패션 아이콘이 되었고.

: 스티븐 마이젤이랑은 나중에라도 꼭 사진 작업을 해 보고 싶어요.(웃음)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시도를 하고 있어요.

: 오늘 경아를 오랜만에 만난 거야. 허심탄회하게 말한 적은 처음이지. 내가 가진 경아에 대한 기억은 아무 말 없이 “네, 아니오” 하는 말만 하던 기억밖에 없어. (웃음) 이만큼 경아가 성장한 거지. 경아 얘기를 들어보니까 우리 때와 포커스가 다른 거 같아. 우리 때는 모델들이 일은 열심히 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지. 스티븐 마이젤이 누군지도 몰랐고. 내가 한창 일할 때 들어온 게 <보그>였어. 그 전에는 한국 잡지가 최고였고. 그런데 라이선스 잡지가 들어오면서 ‘라이선스를 찍으면 톱 모델이 되는구나’라고 모델들이 생각한 거지. 우리 땐 일 얘기하면 “너 스파(SFAA·서울 패션아티스트협회) 컬렉션 몇 개 했어?”라고 물었어. 이게 뭐냐면 “디자이너 선생님 쇼 몇 개 하냐”는 거였지. 그걸 다 하면 최고였던 거고. 경아처럼 “나는 스티븐 마이젤이랑 할 거야”라는 건 아니었거든.

: 경아는 패션 이외의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을 거 같아.

: 제가 생각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는 걸 좋아했는데 어릴 때 꿈을 조금씩 이뤄가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개인 옷 브랜드를 만들어서 뉴욕·일본에 열고 싶어요.

: 경아는 이룰 거야. 모델들이 다양한 옷을 입어 보니까 한 가지 스타일에 빠져 있지 않아 오히려 대중의 마인드에 접근하는 게 더 쉬워요. 처음부터 패션을 공부한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과 벽에 갇힌 경우가 많아.

: 편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또 책을 더 낼 거예요. 아직 구상하는 단계고요, 이번 책은 좀더 예술적인 느낌이 들도록 패션 피플들 만난 느낌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서 책으로 낼 거예요. 전시회도 열 거구요.

패셔너블은 이제 패션을 넘어 문화적인 용어

: 나는 선영이가 너무 좋은 게, 보통 가르치는 분들은 일선에서 일 안 하면서 “옛날에 나는 이랬다”고 가르쳐. 근데 선영이는 아직 활동을 해, 많지는 않지만. 활동을 하니까 현장의 상황을 가르치지. 그게 중요해. 모델들 은퇴하고 나면 살찌고 그러는데, (선영이는)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몸 관리 하니까 존경할 수밖에 없잖아.

: 지금은 ‘패셔너블’이라는 게 문화인 거 같아. 예전에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 말씀이 이제야 와 닿더라고. “너희들은 모델이다. 모델은 모든 분야의 모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델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그땐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와 닿아. 패션 모델은 이제 문화 전반의 ‘색감의 선두주자’라고 보고 싶어. 그래서 나는 요새 제자들한테 “네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라”고 요구해. 계속 모방만 하면 실체가 없어지거든. 요새 애들이 너무 무기력해. 목적의식도 없고. 그냥 모방이야. 멋있어 보이니까.

: 어머, 원고 넘치겠다.

: 넘쳐도 돼. (웃음) 5개 면으로 가자.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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