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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500만원? ‘똥값’의 무한확장

등록 2016-08-04 11:16수정 2016-08-04 11:41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질병 치료 위한 ‘대변 미생물’ 연구 활발…“생태계 이해하는 데 도움”
픽사베이
픽사베이

흔히 가치 없음을 표현할 때 ‘똥값’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과연 똥이 그렇게 하찮고 가치 없는 것일까? 사정은 딴판이다. 2015년 기준으로 질 좋은 똥의 시가는 1년 공급 조건으로 약 1500만원에 달한다. 미국의 오픈바이옴(OpenBiome)은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대변 미생물 이식술’(fecal microbiota transplants·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을 아픈 사람의 장에 이식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안전한 이식 미생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건강한 자원자들의 건강한 똥을 수집하여, 대변 이식술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를 공급한다. 그리고 이런 자원자들에게 한해 사례비로 지급되는 돈이 연간 1500만원이다. ‘똥값’은 시대착오적 발언인 셈이다.

물론 똥이 금전적 이득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픈바이옴 같은 기관들이 참여하는 대변 미생물 이식술은 1980년대부터 시도되기 시작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박테리아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Clostridium difficile)였다. 평소에는 사람의 장 안에 조용히 살아가고 있지만, 수술 등의 이유로 장기간 항생제를 투여하게 되면 이들이 활동을 개시한다. 다른 박테리아와 달리 자주 사용되는 항생제에 내성이 있어 선택적으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클로스트리듐은 치료가 쉽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대장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항생제의 적절치 못한 사용으로 등장한 질환이 클로스트리듐 대장염이었기 때문에, 항생제를 더 쓰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대변은 장내 미생물 연구의 보고
대장염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다른 사람 똥 관장해 넣거나
캡슐에 넣어 얼려 먹이기도

그리고 누군가 생각했다. 다른 박테리아들과의 경쟁이 사라져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장내 미생물을 어디서 얻어낸담? 그리고 어떻게 분리한담? 결론은 간단했다. 똥을 쓰면 만사 해결이지. 처음 이 아이디어가 등장했을 때는 다들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환자의 장 안에 다른 사람의 똥을 집어넣는다니? 하지만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관장 방식으로 주입해야 했기에 이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과, 치료 방법을 받아들이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냄새가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서 오픈바이옴은 똥을 캡슐에 넣어 얼리는 방법을 택했다. 냄새를 줄이고, 적용을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캡슐은 간편하게 입에 넣어 삼키기만 하면 된다.

‘오픈바이옴'의 똥캡슐. 누리집 갈무리.
‘오픈바이옴'의 똥캡슐. 누리집 갈무리.
이처럼 미생물을 단순히 제거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관점은, 인간과 미생물의 균형, 그리고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의 체내외에 살아가고 있는 미생물들이 실제로는 사람의 삶과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셀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생태계다.

2008년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를 시작했다. 인간과 함께하는 미생물 전체의 지도를 그리겠다는 연구예산만 1300억원에 이르는 원대한 작업이었다. 연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자가면역질환, 비만, 소화기 질환 등 다양한 질병과 미생물의 연관성을 밝혀내고 있다.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건강한 사람들과 매우 다르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폐증이나, 정신질환, 심지어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도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어쩌면 미생물들이 우리의 기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식과 함께.

이렇듯 여러 가지 과학적,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소독제와 항생제의 발견으로 20세기를 관통했던 ‘무균’의 시대를 지나, 사람들은 점차 미생물의 ‘균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듯, 사람들의 미생물 구성을 측정해주는 스타트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유바이옴(uBiome)이라는 회사다. 과거 간단히 면봉에 체세포만 묻혀 보내주면 유전체를 시퀀싱(염기서열 분석) 해주던 것처럼, 요즘은 면봉에 똥을 조금 집어 보내주면 똥 안에 있는 미생물 구성을 분석해준다. 회당 가격은 약 10만원.

유바이옴 누리집 갈무리.
유바이옴 누리집 갈무리.
정준호·기생충 애호가
정준호·기생충 애호가
단순히 질병의 측면뿐 아니라,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우리 몸에 살아가는 미생물들의 미시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은 어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또 어떤 맥락에서 존재하고 있는가. 이는 더 넓은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퍼즐 조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하는 미생물들은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알려주는 그런 존재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정준호·기생충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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